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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피할 수 없었다, 쓴 아몬드 향기는 언제나 그에게 보답 없는 사랑의 운명을 상기시켰다. 죽어가는 몸 가운데도 피어나던 사랑은 어떤 면에서 죽음보다 더 강렬하기도 했다. 라일락 향기가 코를 찌르는 여름이었다. 누구도 땀을 흘릴 수 밖에 없는 햇빛의 위악보다 더 뜨거운 것이 피어나던 때가.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면, 나의 심장은 타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주근깨와 후줄근한 옷 그리고 덧대어 입은 화려한 미소가 나를 뜨거움 속에서 몸부림치게 만들었다. 내가 오로지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다니던 가게일 따위에서. 시장이 열리는 새벽, 그 하루의 시작을 기다리게 하던 그녀. 세비아. 그녀의 앞길이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길 바랬건만, 세비아가 계절이 바뀌어도 오지 않는다. 낙엽이 떨어지려는 쯤에, 세비아가 주로 들리던 가게로 찾아가 괜히 관심도 없는 물건만 쳐다보고 있다. 세비아가 자주 사던 사과. 그 중에서도 그녀와 닮은 풋사과였다. 가만히 미소를 짓던 그때, 이야기가 들려왔다. 세비아가 죽었다고. 정말일까? 그 나의 세비아를 말하는 것일까? 대체 왜?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내가 가장 분노했던 것은 세비아의 죽음으로 인해 전하지 못한 나의 사랑의 부재였다. 그 순간, 사람의 존재가 이리 한없이 가볍고 하찮게 느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은 세비아의 화장터에 숨어들어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달콤했던 라일락 향기는 찾아볼 수 없고, 쓰디쓴 아몬드 향기만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나의 사랑은 향기만 남긴 채 떠나갔다.

(3.8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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