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고수 씨앗을 정성스럽게 심고 밤새도록 기다렸다고 해줄래? 발아가 빨리 되려면 적셔야 해 손톱에 힘을 실어 껍질을 깨주면 싹이 더 쉽게 자랄 거라고 귓바퀴에 당신의 소리가 맴돌아 물기가 남은 손을 닦지도 못하고 잠들었어 씨앗을 건네주는 손은 투박하고 어느 때보다 다정했지 내게 봉투를 쥐여주며 당신은 도망간다 따듯한 물이 담긴 그릇에 고수 씨앗을 와르르 부으면 무언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겨울에 건네받은 씨앗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수를 사 먹는 내가 정수를 받아 물을 주고 나면 잘 자랄 것이다 고수는 뿌리가 길게 자라는 식물이니까 더 곧게 뻗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을 닮은 화분을 골랐다 회갈색의 단단한 도자기 십 년 전 가게에서 해고된 사람은 잘은 숨구멍 여럿 가졌겠지 가능하다면 뿌리로라도 달리고 싶었어 나는 철이 없어서 언제나 당신의 옆에 있고 싶었으니까 겨울의 식물은 물을 가끔 주어도 잘 자란데 젖지 않고 자라는 건 힘든 일이지만 어스름한 흙에서는 뿌리도 내릴 수 없다는 걸 이제야 눈치채버렸어 찬기 머금은 도자기를 꼭 쥐고 있는 그 먹먹한 손을 고개를 굽혔는지도 모르고 당신도 생각했겠지 잘 자랄 것이다 어떤 말은 지나고 난 뒤에야 떠올라 흔적을 남긴다 염치도 없이 덕분에 여전히 소중한 것의 낭비는 재밌고 나는 눅눅하게도 잘 자랐다
등록번호 : 100069
이 시는『소소』 님이 쓴 것입니다. 작가 프로필 보기(클릭 이동)
●작가의 한마디:
"엄마만큼 커버린 자녀가 엄마의 모성애를 이해하고 깨닫고, 엄마가 준 사랑때문에 이만큼이나 잘 자랐다라고 말하는 시 입니다! 그치만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만큼 성숙하지 못해요 한마디로 철이없는 딸이 엄마를 떠올린 시 입니다"
●인스타그램:
"wlucid_98"(클릭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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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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