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락에선 왜 카세트를 틀까요?
2024.06.09  ·   by 크리스

이 글로 당신을 설득해보겠습니다. 45초만 읽으면 됩니다. 주제는 알고리즘과 취향입니다.

  • 알고리즘은 편리합니다. 무엇이든 추천해줍니다. 고민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당신의 취향은 flat해지고 있습니다.

  • 제 생각이 아닙니다. 미국의 예술평론가 카일 체이카(Chayka)는 저서 <필터월드:어떻게 알고리즘이 문화를 평준화시키는가>(2024)에서 "알고리즘은 취향을 알아가도록 하는 게 아니라 취향을 떠먹여주거나, 강요한다"고 말합니다.

  • 알고리즘의 목적 때문입니다. 알고리즘의 모든 관심사는 '유저 이탈률을 낮추는 것', 즉 오래 머물게 하는 것에만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유저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폭넓게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확실하게 좋아할 것"만 보여줍니다.

  • 마일드하고, 무난무난하게, 누구나 좋아할만한, flat한 콘텐츠만 '반복적으로 추천'한다는 것입니다. 한때 유튜브를 휩쓸던 로파이(Lo-Fi)가 그렇습니다.

  • 알고리즘은 '내 취향'을 분석하지 않습니다. 플랫폼이 밀고 싶은 콘텐츠를 '네 취향'으로 둔갑해 보여줍니다. 2021년 한 실험에서 넷플릭스가 취향이 뚜렷하게 다른 10개의 계정에 영화 <분노의 질주> 전체 시리즈를 동일하게 추천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실상 내가 뭘 많이 봤든, 뭘 좋아하든 별 상관이 없었던 셈입니다.

  • '내 취향을 정확하게 아는 듯한' 알고리즘의 비밀은 머피의 법칙Murphy's law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기억은 선택적입니다. 혹시 운전할 때 '왜 급할 땐 항상 빨간불일까?'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사실 따져보면 초록불이 훨씬 많을 겁니다. 초록불은 별 생각 없이 지나치고, 빨간불일 때만 기억하기 때문에 '급할 땐 늘 빨간불'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 같은 이유로, 알고리즘이 9번 틀려도 1번만 맞추면 "와, 대박! 신기한데? 역시 알고리즘"이라고 여기는 것일 수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그 엄청나다는 유튜브 알고리즘의 추천 목록을 봐도 '요즘따라 왜이렇게 재밌는 게 없지..'하고, 예전에 재밌게 봤던 걸 재탕 삼탕한 적이 있었을 겁니다.

유락yoorak의 카세트 프로젝트 "We don't like algorithm."은 이런 맥락 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정체불명의 알고리즘들이 "너의 취향은 이거야"라고 함부로 단정짓는 시대입니다. 카세트 플레이어는 AI스트리밍에 비해 불편하고 번거롭지만, 이렇게 찾아들은 음악은 '취향'이 된다, 는 게 저희 주장입니다.

45초가 지났습니다. 아무래도 설득에는 실패했을 것 같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 시도해보겠습니다.

크리스
@yoorak_coffee_roasters
안녕하세요!
작성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