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쓸모함의 쓸모에 대하여
2024.06.16  ·   by 크리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문학을 모릅니다. 하루키도 모릅니다. 에세이 몇 편 읽은 것이 전부고 그가 쓴 소설은 평생 단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아주아주 잠깐,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어느 신문사의 문학담당 기자를 한 적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그것과는 많이 달랐을 겁니다.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데 쫓기듯 살았고, 늘 때우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래서 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문학을 모릅니다.

문학이라는 것이 영 쓸모없어 보였습니다. 지금이야 유명무실해졌지만 한때 동료들과 독서모임을 4~5년 정도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제가 펴본 소설이라고는 한 손에 다 꼽을 정도입니다. 그것도 등 떠밀리듯 읽었던 것일뿐, 스스로 고른 책은 모두 '현재의 쓸모'에만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문학이란 도무지 손이 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이 사람의 글을 보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의 말입니다.

"문학은 써먹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은 권력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며 부를 축적하게 하는 수단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써먹지 못하는 것을 써먹고 있다.

(...)

문학은 실현될 수 없는 인간의 꿈과 현실과의 거리를 드러낸다. 아무리 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꿈이 있을 때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 거리를 취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반성할 수 있다. 꿈이 없을 때, 인간은 자신에 대해 거리를 가질 수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 갇혀 버려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말하자면 무쓸모의 쓸모(!)인 셈입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심각한 실존의 위기(?)에, 구렁텅이에 빠질 때마다 손을 내밀어준 건 그토록 쓸모없어 보이던 문학뿐이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문학이 뭔지 잘 모릅니다. 잘 읽지도 않습니다. 무용無用하고 무쓸모하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문학이 자꾸 눈에 밟히는 건 아마 지금의 현실이 어떤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 저만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하루키의 글은 늘 읽고 싶었습니다. 다음 글에선 왜 하필 하루키인가,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크리스
@yoorak_coffee_roasters
안녕하세요!
작성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