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된 반달리즘에서 느껴지는 허위성의 감지
2024.07.23  ·   by 크리스

며칠 전 서울대에 다니는 어느 장발의 미대생이 리움 미술관 전시장에 걸린, 1억5000만원 상당의 작품(바나나)을 까먹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고 한다. 낯설진 않다. 2019년 세계 최대 미술장터 '아트 바젤'에 등장한 바나나 역시 어느 행위예술가의 위장 속에서 눈을 감았다. 동서를 막론하고 바나나는 늘 굶주린 예술가의 먹잇감이 된다.

문학 비평 용어 중 '감상주의'라는 것이 있다. 부정적인 표현이다. 감상주의는 애상감, 비감 등의 정서를 인간성의 사실적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그런 정서에 빠져 있는 상태를 즐기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장할 때 생겨난다.

문학평론가 이상섭은 감상주의에 대해 "쾌감을 일으키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여 작품의 사실적 상황과는 관계 없이 그 정서를 조장하고 연장시키려고 하면 독자는 얼마 안 가 그 '허위성'을 감지한다"고 지적한다.

이 영리하고 전도유망한 청년이 간과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지인을 동원해 자신이 쿨(cool)하게 작품을 훼손하는 장면을 렌즈에 담은 뒤, 거기서 모자라 유력 방송사에 자신의 범법행위를 이러쿵저러쿵 친절히 제보하고, 며칠은 고심한 듯한 문장 가득한 인터뷰를 내놓는 것. 이 치기 어린 모노드라마에 반응하는 관객은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중은 작품에 담긴 허위성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물론 자신의 천재성과 예술성을 널리 알리고 싶은 명문대생의 활화산 같은 나르시시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재미가 없었고, 감동이 없었을 뿐이다.

2023년 4월

크리스
@yoorak_coffee_ro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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