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 은별이 사건, 그 후
2024.09.04  ·   by 크리스

1-1. 영혼을 살해당한 아이들

20세 이하 성범죄 피해자/ 지난 10년 동안 4만5011명/ 13세 이상 ‘동의연령’ 간주/ “서로 좋아서”… 처벌 면제/ 임신·출산까지 했던 은별이/ 8년 지났지만 고통은 계속

‘영혼 살인.’

성폭행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격을 말살시키며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성장기에 있는 아동·청소년들의 피해는 그래서 더 치명적이다. 인간에 대한 불신에 시달리거나 지워지지 않는 상처에 평생 괴로워한다. 때론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며 이유 모를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4만5011. 지난 10년간 영혼을 ‘살해’당한 아이들의 숫자다. 20세 이하 성범죄 피해자에 관한 경찰 범죄통계가 그렇다. 매년 4000∼5000명의 아이가 성범죄에 노출되며 그중 41.3%(2018년 기준)가 강간·유사강간 피해를 입는다.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됐다고 기억마저 지워질 리 없다.

현실은 잔인하다. ‘솜방망이’ 처벌과 ‘무죄’ 선고가 잇따른다. “외모가 성숙해서 몰랐다” “저항하지 않았다” “사랑이었다” 등 법정에 난무하는 말은 ‘흉기’다.

이른바 ‘은별이(A씨) 사건’은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정확히 보여준다. 42세의 연예기획사 대표 조모씨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15세 여자 중학생과 성관계를 맺어 임신에 출산까지 하게 만들었지만 ‘죄가 없다’고 했다. 해당 여학생은 조씨 아들과 불과 2살 차이였다. 5번의 재판을 거쳐 2017년 11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은별이가 우리 형법상 ‘동의 연령(age of consent)’인 13세를 이미 넘긴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조씨는 “성관계 동의가 있었고 서로 연인 사이였다”는 주장을 펼쳐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19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이제는 20대가 된 A씨는 아직도 조씨와 소송 중이다. 사건 발생 후 8년이 지났음에도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3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지난해 12월 이겼으나 조씨가 불복해 다음달 26일 항소심 재판이 열린다. 조씨는 A씨의 심리상태를 검사한 뒤 검찰에 의견서를 낸 대학교수, 관련 기사에 악플을 단 네티즌 등도 고소했다.

A씨와 가족은 거듭된 소송에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조씨는 입장을 묻는 취재팀에 “상대방의 거짓 제보에 속지 말라”고 요구하며 자신은 잘못이 없음을 강조했다.

사법부의 판단은 물론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이 사건을 두고 ‘다른 나라 같으면 무죄가 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꼬집는다.

과연 그럴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세계일보 취재팀은 지난 2개월 동안 전문가들과 함께 우리나라 아동·청소년 성범죄 양상을 분석하고 현행 동의 연령 기준인 13세의 기원을 추적했다. 14개국 시민단체를 상대로 한 국제 설문조사와 대국민 인식조사도 실시했다.

1-2. 13세만 되면 성폭력이 '사랑' 둔갑… 너무 낮은 '성적 동의 연령'

<상> 아직 끝나지 않는 '그 사건'/ 사회 공분 일으킨 ‘은별이 사건’/ 15세 여중생과 관계 40대 男 “연인” 인정/ “임신 충격… 상대 요구 끌려다녀” 반박에도/ 대법, 원심 깨고 무죄… 피해자 무고 피소/ 사랑·범죄 경계 모호… 법망 피하는 가해자/ 아이와 성관계 뒤 “서로 사랑한 사이” 주장/ 성적 호기심·불안 이용… 동의 증거 만들어/ 아동 특수성 인정 않는 法 무책임 지적도/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문제 없나/ 韓, 13세 이상 동의 여부 따져 유무죄 결론/ 성적 자기 결정권 놓고 인정 범위 논란/ “그루밍 범죄 늘어 동의 연령 재정립 시급”

“누구나 고교 시절은 추억으로 가득 차 있죠. 그런데 이 아이는 그런 기억이 없어요. 고교 생활을 딱 한 달 했어요. 그리고 수년간 수사기관과 법정에 이리저리 불려가야 했어요. 이제 끝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또 법원에서 불러요. 절망감이 듭니다. 도대체 무슨 죄를 그리도 크게 지었다는 걸까요….”

‘정의’란 무엇일까. 20년 전 맺은 인연으로 ‘은별이(A씨) 사건’ 초기 때부터 현재까지 A씨와 그 가족을 돕는 이학용(67) 목사는 ‘그 사건’ 이후 정의란 말을 입에 쉬이 담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 자퇴, 보호시설, 6번의 재판, 그리고 지금의 소송전까지…. 세상은 참 가혹했다.

“지난해 변호사 없이 민사소송을 치렀어요. 시민단체에 알리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일부러 안 그랬습니다. 왜냐고요? ‘할 수 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만큼 절망적이었는데….”

연예기획사 대표였던 조모씨는 지난해 10월 대법원 무죄를 들어 무고 등 혐의로 A씨를 형사 고소했다.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냈다.

조씨는 이 사건으로 1심 징역 12년, 2심 9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대법원은 A씨가 조씨에게 150여통의 편지를 보낸 점, 평소 애칭을 사용한 점 등을 들어 ‘연인 관계’라고 결론지었다. A씨 측은 ‘어린 나이에 임신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고, 몸이 불편한 부모님이 충격을 받으실까봐 상대방 요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처음 무죄가 나고 다수 언론이 판결을 지적했어요. 수많은 시민단체와 법조인도 도움을 주셨죠. 두 번째 대법 판결 전에 다들 ‘유죄가 날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결과를 보니…. 그래서 민사소송도 우리가 유리할 게 없다고 본 거죠.”
지난해 12월 1심은 “무죄가 확정됐다고 무고인 것은 아니다”는 취지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올해 2월 검찰도 조씨의 무고 고소사건을 ‘무혐의’로 결정했다. 겨우 한시름 놓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조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무혐의 처분에 대해선 ‘다시 판단해 꼭 A씨를 처벌해 달라’는 취지로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했다.

지난 13일 취재팀과 만난 이학용 목사는 “은별이(A씨)와 그 가족들이 지금도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 이 목사는 A씨 가족을 도와 힘겹게 소송을 준비 중이다. 고통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 목사는 “끝이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상상해보세요. 소송이 끝나면 다 끝나는 걸까요? 아이는 자신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믿는데 국가가 ‘그건 사랑이었다’고 결론낸 거예요. 이 얼마나 비극적인가요….”

◆끝나지 않는 ‘아이들의 잔혹사’

우리 사회에서 이런 비극의 서사는 비단 이 사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19일 세계일보 취재팀이 청소년성폭력상담소 ‘탁틴내일’ 전문가들과 언론 보도, 법원 판결문, 상담 사례 등을 토대로 최근 10년 동안 사회적 논란이 된 아동·청소년 성범죄 사건들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아이’와 성관계를 가진 ‘어른’은 공통적으로 “서로 사랑한 것”, “동의한 관계” 등 논리를 들고 나왔다. 이는 우리 법이 아동의 ‘특수성’ 인정에 인색한 데다 사랑과 범죄의 경계가 모호해 ‘동의’만 인정되면 법망을 빠져나가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2010년 20대 남성 3명이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12살 초등학교 여학생을 여관으로 불러 술을 마시게 한 뒤 돌아가며 성관계를 맺었으나 법원에서 무죄가 난 사건이 대표적이다. 법원은 “음주와 성관계는 인정되나 심리적·물리적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초등학생인 줄 몰랐다’, ‘저항하지 않았다’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지난 6월 ‘10살 여자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은 1심의 징역 8년이 2심에서 3년으로 깎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 몸을 누른 행위가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초등학생과 성관계는 있었으나 강간으로 볼 순 없다’는 논리다. 이후 “감형 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돼 국민 24만명이 동의했다.

지난해 11월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에 다니는 여자 중학생과 수십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가 법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30대 학원장은 기혼남인 데다 자녀도 있었으나 법정에선 “중학생과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권현정 탁틴내일 부소장은 “아이들의 순수한 호의나 성적 호기심, 불안감 등을 이용해 ‘동의 증거’를 치밀하게 만들어 놓고 문제가 되면 ‘서로 좋아한 것’이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수사기관에 불려간 아이들이 제대로 된 대처에 어려움을 겪는 것과 달리, 가해자들의 방어 논리는 점점 더 정교해지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바보야, 문제는 ‘동의 연령’이야”

다수 전문가는 ‘만 13세’로 규정된 우리나라의 ‘성적 동의 연령’을 문제의 시발점으로 꼽았다. 대다수 선진국이 16세를 기준 삼고 있으며, 개방적 분위기로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은 아예 18세로 우리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현행법 아래에서 한국은 12세 이하 아동과 성관계를 한 상대방은 형사처벌하지만, 13세 이상이면 일단 동의 여부부터 따진다. 13세부터는 ‘임신 등 성관계로부터 오는 미래 피해와 의미를 충분히 인지·예상한 상태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목격자나 증거가 부족한 성범죄 특성,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이 먼저’라는 형사법 대원칙이 더해지면서 성범죄가 ‘사랑’으로 둔갑하기 쉬운 조건이 형성된다. 2010년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13세 여자 초등학생에게 음란행위를 시키고 강간을 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은 성관계 당시 피해 아동 나이가 13세 생일로부터 불과 ‘4일’ 지났다는 이유로 강간죄는 무죄가 되고 음란행위만 인정됐다.

지난해 7월 대구에서 10대인 여자 조카와 성관계를 맺은 30대 남성의 경우 법정에서 “실은 연인 관계였다”는 주장을 펼쳐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피해 아동 나이가 13세 이상이다 보니 일반 성폭행 사건과 똑같은 구도로 재판이 진행됐다. 법원은 “직접 증거가 조카의 진술밖에 없으며 삼촌이 조카를 때리거나 위협한 사실이 없고 적극적인 저항의 표시가 없었다”며 삼촌의 죄를 묻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의제강간 연령, 즉 성관계 동의 연령 상향이 아동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반론을 편다. 하지만 어른이 아이들을 심리적으로 길들인 뒤 성적으로 착취하는 ‘그루밍 성범죄’가 확산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아이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연 어디까지 보호할지는 논란의 여지가 큰 대목이다.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와 성관계를 한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루밍 성범죄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아동 성범죄 흐름과 아이들의 성에 대한 인식 수준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맞는 동의 연령 재정립이 필요하다”며 “동의 연령이 상향되면 ‘어른이 아이와 하는 성관계는 무조건 범죄’란 인식이 확산하는 등 형벌의 ‘일반 예방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우리 사회는 성 문제에 대단히 보수적이고 대부분 이슈에서 아이들을 ‘보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데, 유독 이 문제에서만큼은 아동·청소년에게 ‘너희의 선택이니 알아서 책임을 지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지독한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모두가 무관심할 때 손 잡아준 선생님… 성적요구 거부 못한 내가 죄인된 심정”

중학교 3학년. 음악이 꿈이었다. 하지만 부모님도, 친구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한 사람만 달랐다. 선생님. 꿈을 이해해줬다. 이야기를 들어줬고 같이 고민해줬다. 가끔은 작은 선물을 주기도 했다. “열심히 공부하라”며 문제집을 건넸다. 통기타를 가르쳐줬다. 비타민도 줬다. 점점 가까워지던 차에 그가 불쑥 말했다. “손 잡아도 되니?” 거절하지 못했다.

따뜻한 조언자였던 그는 급기야 성적 요구까지 했다. 혼란스러워하는 ‘나’와 달리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수롭지 않게 행동했다. ‘내가 이상한가….’ 한 번은 친구에게 그와의 관계를 에둘러 언급했다. 나중에 이를 안 그는 불같이 화를 냈다. 대단한 문제라도 일으킨 것처럼 쉼없이 몰아붙였다. 두려웠다. “죄송해요….” 한참 뒤 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온 그가 말했다. “어디 가서 절대 얘기하지 마, 알겠지?”

“그때 내가 웃지 말걸 그랬나. 그때 문제집을 받지 말걸 그랬나. 나의 잘못인가. 계속 자기검열을 하게 돼요….”

지난 12일 취재팀이 만난 이모(23·여)씨는 당시 기억을 털어놓고선 “마치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고민 끝에 인터뷰에 응했으나 여전히 성인 남성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이를 감안해 서은주 탁틴내일 팀장이 인터뷰에 동석했다.

“유죄라고 달라진 건 없어요. 저는 아직도 (안 좋은 기억들과) 싸우는 중이에요. 그 사람과 비슷한 체형, 닮은 사람을 볼 때마다 화들짝 놀라요.” 이씨는 지난해 교사 A씨를 고소했고, 지난달 항소심 재판이 끝났다. 법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연인 관계였다”는 A씨의 주장을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그때 신고를 안 했느냐.’ ‘왜 단호히 거절하지 않았느냐.’ 수사 과정에서 쏟아진 질문이다. 그는 아이들을 조금만 멀리서 봐달라고 호소한다. “아이는 결코 어른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어요. 제발 본인이 피해 아동·청소년이 됐다고 한 번만 상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어른이 된 지금도 무섭고 두려운데 그때는 더 그렇죠. 쉽지 않은 일이에요.”

상대가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점 때문에 여전히 불안하다. 그러면서 그는 ‘은별이 사건’을 언급했다. “그런 사건조차 무죄가 나는데…. 2심 때도 정말 조마조마했어요. 피해자들은 더 이상 법이, 판사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 믿기 어렵게 된 거죠.” 피해 청소년 누구나 해당 판결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란 것. 듣고 있던 서 팀장이 덧붙였다. “청소년들은 인터넷 검색을 매우 잘 합니다. 그 판결은 이미 청소년 사이에 널리 퍼져 있어요. 그리고 아이들을 체념하게 만들고 있죠. 아직 신고도 안 했는데 ‘맞고소당하면 어떡하느냐’고 두려워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게 지금의 현실이에요.”

1-3. 美·터키, 18세 돼야 성적 결정 가능… “은별이 사건 해외선 유죄”

14개국 설문 조사/ “성관계 위험 알기엔 아이들 미성숙” 인정/ 아일랜드 동의 연령 17세, 英 16세, 佛 15세/ 印尼 18세… “외모 성숙도 법정 참작 안 돼”/ 亞서 한국보다 동의 연령 낮은 국가 比뿐/ 일각 “동의 연령 올리면 또래 성관계도 범죄”/ 전문가 “로미오와 줄리엣法 등 보완 가능”

“나는 판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 아동의 ‘강간’ 주장이 성인 가해자의 ‘연인관계(romantic relationship)’ 주장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론적으로 16세 미만 아동은 성행위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아리안 쿠브외 활동가·벨기에)

‘은별이 사건’은 5번의 소송을 거쳐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로 결론 났다. 그러나 27살 연상인 남자와 성관계를 맺고 아이까지 출산한 소녀가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논쟁적’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였으면 무죄는 어려웠을 겁니다.” 이 사건을 두고 국내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낮은 아동인권 인식을 꼬집었다. 그럼 외국인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까. 세계일보 취재팀은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다양한 관점과 ‘성적 동의 연령’ 기준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판단,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6일까지 국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강선혜 ‘탁틴내일’ 청소년성폭력상담소 팀장, 비영리 국제네트워크 ‘엑팟 인터내셔널’ 사무국의 도움을 받아 세계 각국에 은별이 사건에 관한 의견과 동의 연령 기준 등 질문을 담은 설문을 보내 14개국 시민단체로부터 답변서를 받았다. 활동가 개인의 의견임을 전제로 이를 정리해 봤다.

◆“아이는 아이다(a child is a child)”

우선 설문에 응한 14개국 중 12개국에서 ‘우리나라 같으면 유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왔다. 설문에 응한 이들이 속한 나라들 가운데 태국, 사모아, 보츠와나는 아동의 성적 동의 연령이 18세로 가장 높았다. 반면 나이지리아와 필리핀은 12세로 가장 낮았다.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는 연령과 상관없이 ‘혼전 성관계는 모두 처벌된다’고 했다.

동의 연령이 높은 국가에선 이 사건을 ‘범죄’로 보는 시각이 확고했다. 성관계 당시 아동의 나이가 15세란 점에 주목한 것이다.

마후루프 활동가(스리랑카)는 “스리랑카의 동의 연령은 16세이고, 그 이하 아동과 성관계 시 무조건 범죄가 된다”며 “아이를 출산한 것은 성관계가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로, 가해자가 부인할 경우 유전자(DNA)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리오 활동가(인도네시아)도 “아동보호법에 의거해 18세 미만 아동과의 성교는 범죄”라며 “18세 미만 아동의 경우 외모의 성숙도가 법정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껫사니 찬뜨라꿀 활동가(태국)는 “15세 이하 아동과 음란행위를 할 경우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10년 이하 중형이 선고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답변들은 모두 ‘아이들은 미성숙해 성관계가 야기하는 각종 위험을 충분히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모레니케 아데예오마이보예 활동가(나이지리아)는 “아이들은 ‘결정’에 대한 의미를 잘 모를 수 있으므로 18세 미만은 법률로 충분히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결정’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달랐다. 예컨대 동의 연령이 16세인 스위스 같으면 이 사건은 ‘범죄’다. 하지만 17세 이상 청소년과 어른의 성관계는 그 자체로 범죄가 되진 않는다. 마누엘 오이크스터 활동가(스위스)는 “스위스에서 17세 이상은 성관계에 동의할 수 있는 나이”라고 했다. 물론 ‘아이와 어른의 사랑’은 유럽에서도 논쟁의 소지가 큰 사안이다. 토마스 카우프만 활동가(룩셈부르크)는 “최근 이웃나라 프랑스에서 20대 남성이 13세 여아와 성관계를 했다가 법원에 기소됐으나 ‘연인관계’로 잠정 결론이 났다”며 “하지만 대중의 압력(huge pressure from general public)으로 결국 ‘강간’이란 재판결이 내려졌다”고 소개했다.

‘무죄’ 쪽에 무게를 둔 의견도 있었다. 소피아 파파도풀루 활동가(그리스)는 “아동의 나이가 15세 이상인데, 그리스 같으면 미성년자에 대한 남성의 성적 행동(lechery)에 대한 제재가 그리 엄격하지 않다”며 “법원에서 미성년자의 공포감보다는 행위의 동의 여부에 중점을 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리스의 동의 연령 기준은 15세다.

이슬람 문화권은 관점이 아예 달랐다. 다이레트리스 활동가(모로코)는 “(안타깝게도) 모로코에선 ‘아동이 성범죄를 유발했을 수 있다’는 식으로 가해자는 물론 아동에게도 책임을 묻곤 한다”며 “일부다처제이고 12∼17세 소녀가 30∼40대 성인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에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자체가 범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로코의 경우 미성년자와의 혼외 성관계는 1개월∼1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강제성이 인정되면 5년 이하 징역형이 선고된다고 한다.

◆“국제 기준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어”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한국은 아동이 성적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보는 ‘동의’의 기준 연령이 다른 나라보다 너무 낮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즉, 한국에선 아이가 13세만 넘기면 나이차가 얼마가 나든 어른을 포함한 누구와도 성행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과 달리 외국에선 최소 15∼16세, 많게는 18세는 돼야 그 정도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들과의 비교는 현재 한국이 처한 위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동의 연령이 우리보다 낮은 나라는 멕시코(12세) 하나뿐이다. 하지만 멕시코도 연방법상 최저 기준이 그렇다는 것이지 개별 주정부는 14∼16세를 기준으로 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은 아일랜드(17세), 영국·네덜란드·노르웨이·스페인·러시아(이상 16세), 프랑스·스웨덴·덴마크(이상 15세) 등이다. 미국은 16∼18세, 호주는 16∼17세로 지역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보다는 훨씬 높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동의 연령이 14세로 주변국에 비해 다소 낮지만 아동과 성관계를 맺은 상대방이 양육 책임자나 교사 등 아동과 ‘특수관계’인 사람이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아시아 국가로 좁혀도 우리보다 연령 기준이 낮은 곳은 필리핀뿐이다. 중국과 북한은 각각 14세, 15세를 경계로 아동에 대한 성적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이란, 파키스탄, 쿠웨이트,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국가들은 연령과 상관없이 미성년자와의 혼외 성관계를 무조건 처벌한다.

일각에선 ‘동의 연령을 일률적으로 올리면 청소년끼리의 성관계도 범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완 입법’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2008년 동의 연령 기준을 14세에서 16세로 상향한 캐나다는 12∼13세 아동은 나이차가 2살 이내, 14∼15세 아동은 5살 이내인 상대방과는 성적 행위에 동의할 수 있도록 했다. 텍사스 등 미국 일부 주는 나이차가 4살 이내인 경우 청소년과의 성관계를 범죄로 여기지 않는 이른바 ‘로미오와 줄리엣 법’을 시행하고 있다.

앞선 설문에서도 아리안 쿠브외 활동가는 “벨기에에선 16세 미만 아동은 자기보다 5살 이상 많은 사람과의 성관계에 동의할 수 없으며 이 경우 ‘강간’으로 치부된다”며 “하지만 비슷한 연령인 10대끼리의 ‘사랑’은 (범죄로) 별로 고려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강선혜 탁틴내일 팀장은 “다른 국가들의 연령 기준이 무조건 옳다거나 그들이 아동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면서도 “대부분 국가가 16세 이상을 동의 연령으로 삼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하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세계일보 취재팀은 1990년 설립된 비영리 국제네트워크 ‘엑팟 인터내셔널(ECPAT International)’의 도움을 받아 각국 시민단체에 온라인 설문지를 보냈다. 설문지는 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은별이(A씨) 사건’을 정리·번역해 만들었다. A씨가 구치소에 있던 조모씨를 77회 면회한 점, 이 과정에서 애정표현이 담긴 편지를 150여통 보낸 점, 편지를 쓸 때 여러 색깔의 펜을 이용하고 스티커를 붙인 점 등 대법원이 ‘성범죄’가 아닌 ‘사랑’으로 본 근거들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객관적 답변을 당부하면서 가능한 한 구체적 법률 조항이나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설문에는 리나 창(사모아희생자지원그룹)·모레니케 아데예오마이보예(나이지리아여성컨소시엄)·리오(엑팟 인도네시아)·껫사니 찬뜨라꿀(엑팟재단·태국)·토마스 카우프만(엑팟 룩셈부르크)·마후루프(엑팟 스리랑카)·마누엘 오이크스터(아동보호를 위한 스위스 재단)·리사 자무(디딤돌인터내셔널·보츠나와)·다이레트리스(아마네·모로코)·팀 에케사(아동 발전을 위한 케냐 동맹)·아리안 쿠브외(엑팟 벨기에)·소피아 파파도풀루(아리스·그리스)·익명(엑팟 필리핀)·익명(말라위 아동의 눈) 등 14개국 활동가가 응했다.

2-1. 일본 형법 들여와 첨삭·가감… “한국사회 맞는 기준 필요”

<중> 동의연령 13세, 어디서 왔나/ 출처불명의 기준 왜 유지하나 / 미성년자 의제강간 제도 연구 거의 없어 / 한국학술지인용색인 등재 논문 고작 4건 / 이마저도 대부분 해외 법제도 소개 초점 / 日 의제강간 연령 제정 어떻게 / 日, 19세기말 프랑스법 본따 12세 설정 / 1907년 독일식 형법 도입 13세로 상향 / 한국, 100년 전 구시대 기준 고집한 셈 / 국내 실정 반영 재논의 시급 / 美, 州마다 연령 기준 16∼18세까지 다양 / 日 형법과 별개로 음행조례 만들어 보호 / 전문가 “100년 전의 13세는 지금과 달라”

‘13세 미만의 부녀를 간음하거나 13세 미만의 사람에게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 제298조 또는 제301조의 예에 의한다.’ 제정 형법 제305조(미성년자에 대한 간음, 추행)의 내용이다.

오늘날의 형법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 9월 제정됐다. 성관계에 동의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따지는 근거가 되는 ‘13세’ 조항도 이때 만들어졌다. 이 기준은 66년이 지난 지금까지 ‘말뚝’처럼 우리 사회에 박혀 있다.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5년 처벌 조항에 301조의2가 추가되고,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2년 성폭력 범죄의 객체가 ‘부녀’에서 ‘사람’으로 일괄 변경되며 ‘13세 미만의 사람’으로 고쳐진 게 전부다.

형법 제정자들은 왜 13세를 기준으로 삼았을까. 13세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형법 제정 때 국회 회의록을 봐도 그에 관해 어떠한 언급도 없습니다. 이를 확인할 문헌 기록이나 사료도 없는 듯합니다.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 일본에서 건너온 것 아닐까 합리적으로 추정하는 거죠. 만약 어떤 논의가 있었다면 기록이 따로 남아 있지 않을까요?”(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20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이 분야 전문가들도 정작 13세 기준이 어떻게, 왜 만들어졌는지 아는 바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우리 형법 제정 당시 일본 형법을 거의 그대로 따른 점, 당시 일본 기준이 13세였던 점을 들어 “일본 법을 참고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입증할 사료가 있느냐”는 취재팀 질문에 모두 “없다”고 답했다.

1953년 3월23일 국회 정기회의 속기록에는 판사 출신 국회의원이던 김종순이 “우리가 사실상 부끄러운 것은 (해방 후 8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문자로 된 법문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것”이라며 형법안을 의회에 긴급상정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50년대 별다른 사회적 합의 없이 만든 ‘출처불명’의 13세 기준이 7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의제강간 연령 상향 움직임이 매번 변죽만 울리다 끝난 데에는 이처럼 법 제정 배경과 근거가 불분명한 점도 한몫했다. 다른 국가들이 사회적 논의를 거듭하며 자국의 사회·문화적 특성이 반영된 ‘성적 동의 연령(age of consent)’을 찾아간 것과 대조적이다.

◆“100년 전 일본 기준 왜 고집하나”

취재팀이 의제강간 논문 발표자와 국책연구기관, 시민단체, 학계, 법조계 등을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그동안 국내에서 미성년자 의제강간 제도에 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등재된 ‘의제강간’ 논문(제목 기준)은 고작 4건뿐이다. 이마저 대부분 외국의 연령 기준과 법제도를 소개하고 한국과 비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2013년 관련 논문을 발표한 김한균 연구위원은 “해외에서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생물학적 이유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이유를 근거로 기준을 올리거나 내려왔다”며 “우리는 이제껏 그런 논의가 부재했으며 이 때문에 이 제도가 보호하는 법익에 대한 시각도 합의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의제강간 연령 상향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현행 기준이 ‘일본에서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우리 사회가 단 한 번이라도 13세 아동의 성적 자기결정권 등 의미에 대해 연구를 해본 적이 있느나”며 “100년 전 남(일본)의 법을 베껴 지금까지 안 바뀌고 있는데, 그때 일본 사회와 지금 우리 사회가 어찌 같을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미국만 봐도 주마다 연령 기준이 16세부터 18세까지 다르듯 우리도 한국 사회에 맞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현행 13세의 기원이 일본일 것이라는 주장은 ‘추정’에 가깝다. 하지만 일본 형법과 우리 형법이 여러 면에서 닮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죠.” 원로 형법학자인 신동운 서울대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왜 우리의 의제강간 연령이 13세로 정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형법이 일본과 대체로 유사한 것은 사실입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1953년 형법 제정 전까지는 따로 우리 형법이 없는 탓에 일본 법전을 계속 쓸 수밖에 없었어요. 법을 만들려 해도 자료나 형법학자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기준 하나를 가져와 우리 여건에 맞게 첨삭·가감하자’는 주장이 제기됐죠. 그때는 우리말 형법이 최우선적 과제였습니다. 그때 가져온 것이 바로 일본 형법이었습니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자기네 형법을 고치려고 만들다가 1941년 태평양전쟁 이후 폐기한 개정안을 가져다 쓴 것이었죠.”

◆“일본 형법도 프랑스 형법에서 시작”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 과정을 거쳐 13세를 기준으로 삼은 걸까.

그동안 일본의 13세 기준을 놓고 국내에선 초등학교 졸업 연령이나 혼인 풍습, 가임 연령 등 여러 가설이 제기됐다. 취재팀은 보다 정확한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일본 ‘인간과 성’ 교육연구협의회 본부 간사이자 일본 주오대 겸임강사인 성교육 전문가 박혜정씨 도움을 받아 일본국립국회도서관(NDL), 일본국립정보학연구소(CiNii)에 오른 각종 논문과 국회 회의록, 학술지 등을 바탕으로 그 연원을 추적해봤다.

우선 일본의 의제강간 연령은 19세기 말엔 12세였으나 1907년 13세로 한 살 오른 뒤 현재에 이르렀다. 관련 논문에 따르면 메이지 정부는 1873년 ‘일본 근대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인 법학자 보아소나드의 주도 하에 ‘형법 제1초안’을 만든다. 이는 당시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구 열강이 일본과 맺은 불평등조약에 따라 보유한 영사재판권(영사가 주재국에서 자기 나라 법률로 재판하는 권리) 철폐가 목적이었다. 열강들이 일본에 “먼저 근대적 사법체계부터 갖추라”고 요구하자 일본 정부가 프랑스인 학자를 ‘용병’처럼 부른 것이다.

일본 법무성의 ‘성교 동의 연령에 관한 논의 경위 등’이란 문건을 보면 1907년 일본 정부는 ‘여자의 발육 정도’ 등을 근거로 기존 12살이었던 의제강간 연령을 13살로 높인 것으로 나와 있다.

와세다 대학에서 출간한 ‘일본형법초안회의록’(1977)에 따르면 당초 보아소나드는 프랑스 형법을 본떠 성추행, 강간 등 범죄 성립을 따질 때 기준이 되는 동의 연령을 각각 12세와 15세로 구분했다. 이에 일본 편집위원들이 둘 사이의 차이가 뭔지 물었으나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 측은 “연령을 둘로 나누면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이를 12세로 통일시켰다. 즉 일본의 연령 기준은 프랑스법에서 출발한 셈이다.

이후 일본은 공화국인 프랑스 대신 군주국인 독일 헌법에 기초한 메이지 헌법을 1890년 시행하며 형법 역시 독일식으로 바꿔 1907년 신형법을 만들었다. 이때 의제강간 연령 기준도 12세에서 13세로 상향된다. 1907년 의회에 제출된 ‘형법개정안 이유서’를 보면 ‘12세를 13세로 정한 것은 될 수 있으면 음란행위에 물들지 않는다는 희망, 생리(월경)상 12세 이상이라기보다는 13세 이상 쪽이 적당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이유였다.

2015년 2월 ‘제6회 성범죄 벌칙에 관한 검토회의’에서 배부된 ‘성교 동의 연령에 관한 논의 경위 등’이란 문건에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 1906년 12월19일 형법 개정안을 위한 법률위원회가 기존 의제강간 기준 연령을 13세 또는 14세로 올리는 수정안 투표를 실시해 과반인 8명이 지지한 13세안이 14세안(4명)을 누르고 가결됐다. 이때 ‘법학자인 호즈미 노부시게 위원이 의학박사인 사카키 야스사부로에게 위탁·조사한 여자 초경 평균 연령을 들어 13세에 찬성했다’는 취지의 기록이 남아 있다. 바로 이 기준이 100년도 더 지난 지금 한국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100년 전과 지금은 달라”

이후 일본은 1974년 ‘형사 책임 연령과 조화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외국 입법례(서독·스웨덴·스위스 형법)를 들어 기준 연령을 14세로 상향하려 했으나 무산됐다. 그렇다고 일본이 18세 미만 청소년들을 성인의 성적 접근으로부터 방치하는 건 아니다. 형법과 별개로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른바 ‘음행조례’를 만들어 13세 이상 청소년까지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

유가쿠 도쿄 시바파크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예를 들어 ‘도쿄도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에 관한 조례’를 보면 18세 미만 청소년과 성교 또는 유사성교를 한 사람은 2년 이하 징역이나 100만엔(약 114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된다”며 “다만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이 목적이므로 청소년 간의 관계는 죄를 묻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법률 조항만 13세일 뿐 일본의 의제강간 연령 기준은 사실상 18세인 셈이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2019년의 한국은 1953년, 혹은 1907년과 비교해 사회·문화·경제적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며 “현행 연령 기준을 고집하는 건 100년 전의 13세와 지금의 13세가 같다고 우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일본의 ‘음행조례(淫行?例)’란=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을 도모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조례안을 통칭하는 말로, 정식 명칭은 아니다. 일본 법원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위해 심신이 미성숙한 청소년과 부당하게 이뤄진 성행위’를 음행으로 보고 처벌한다. 단, ‘진지한 교제 관계에 있다’는 전제로 청소년끼리의 관계는 처벌하지 않는다.

*<탐사기획 - 은별이 사건, 그 후> 시리즈 1화와 2화에 실린 기사입니다.

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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