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실화… 문학의 벽 허물고 ‘기지개’
2024.09.04  ·   by 크리스

‘논픽션 소설’ 새 장을 연 미국
1970년대 전후로 뉴저널리즘 운동
트루먼 카포티의 ‘냉혈한’이 분수령
뉴요커 등 중심으로 보폭 넓혀나가

늘 따라붙는 ‘진실 논란’
퓰리처상 받은 ‘지미의 세계’ 허구로
獨 슈피겔지의 ‘재거의 국경’도 조작
완벽한 서사구조 욕심에 빗나가기로

국내도 활성화 움직임
2010년 이후 르포에 대한 관심 커져
‘악의 마음을 읽는자들’ ‘노랑의 미로’
실제 사건 바탕의 작품 꾸준히 나와_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로 ‘냉혈한’(1966)을 쓴 트루먼 카포티.

다음은 어느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말 더듬는 열여덟 살 강인구. 장애를 가진 부모 밑에서 지적장애인으로 태어나 월세 10만원 단칸방에서 아버지와 둘이 사는 그는 중학교 중퇴에 한글도 잘 모른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한 무리의 경찰들. 영문도 모른 채 붙들려간 강인구는 별안간 강도 살인범이 된다. “저…아니에요….” 아무리 호소해도 돌아오는 건 발길질뿐. 그는 결국 교도소에 가게 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나타난 진범.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을까. 강인구와의 대질 신문에서 진범은 그만 펑펑 눈물을 쏟고 만다. 어쩐지 앞뒤가 바뀐 듯한 광경. 그러나 “범인은 나”라고 말하는 그 사람을, 냉정한 얼굴의 검사는 강인구의 눈앞에서 “당신은 범인이 아니”라며 돌려보낸다. 시간이 흘러 17년 만에 누명을 벗은 강인구. 그런데 그가 느낀 바는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온다. “세상에서…나를 위해…울어준 사람은…그 사람뿐이었어요. 그 진범….”

현실에 이런 일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다. 언뜻 억지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이 이야기는 그러나 소설이, 허구의 창작물이 아니다. 모두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의 원작인 논픽션 취재기 ‘지연된 정의’(2016)는 강씨를 비롯해 재심 무죄가 선고된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1999),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2000) 누명 피해자들이 겪은 질곡의 세월을 풀어놓는다.

물론 서사의 흐름이나 문장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할 순 없겠으나 기자의 취재가 밑바닥에 깔린, 모든 내용이 사실이란 점에서 책은 소설에선 느낄 수 없는 강렬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사실의 세계는 일단 활자로 옮겨지기만 하면 그 자체로 강한 소구력이 생긴다.

◆일찌감치 ‘논픽션 소설’ 눈뜬 미국

논픽션이 다소 낯선 우리와 달리 미국은 오래전 논픽션의 매력에 눈을 떴다. 특히 등장 인물과 사건, 서사구조가 뚜렷한 ‘내러티브 논픽션(Narrative nonfiction)’이 인기를 끌었는데, 그 근간에는 기존 작법에 염증을 느끼던 문인과 기자들의 실험과 도전이 있었다.

1980년 워싱턴포스트 1면에 실린 피처기사 ‘지미의 세계’.

1970년대를 전후로 나타난 이른바 ‘뉴 저널리즘’ 운동이 대표적이다. 19세기 영미 사실주의 문학 전통의 부활, 즉 찰스 디킨스와 마크 트웨인, 조지 오웰,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등이 보여줬던 문학성 강한 저널리즘 전통을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언론계를 중심으로 고개를 든 것이다. 출간되자마자 미전역에서 불티나게 팔린 트루먼 카포티의 ‘냉혈한’(1966)은 그 분수령이었다.

뉴욕 사교계의 총아이자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쓴 작가로 유명했던 카포티는 뉴욕타임스에 실린, 짤막한 살인사건 기사를 우연히 본 뒤 캔자스 구석의 작은 마을 홀컴으로 내려가 취재를 벌인다. 장장 6년여 취재 끝에 발표된 이 최초의 “논픽션 소설(Nonfiction novel)”은 20세기 문단의 지형도를 단숨에 바꿔놓았다. 원체 문장이 아름다웠던 그는 치밀하고 집요한 취재 끝에 한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을 종이 위의 활자로 고스란히 재현해냈다. 피해자인 클러터씨 가족이, 살인을 벌인 페리와 딕이 동시대를 산 실존 인물임을 알게 된 독자들은 이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이 작품이 실렸던 뉴요커와 포틀랜드 지역지 오레고니언을 중심으로 기사와 소설 사이의 어디쯤 있는 내러티브 논픽션이 점점 더 보폭을 넓혀갔다. 2004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애틀랜틱은 “소설이나 희곡, 시를 읽는 미국인의 숫자가 1982년에서 2004년 사이 10%나 감소해 사상 최저치인 47%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는데, 이 감소분 대부분이 논픽션 쪽으로 이동했을 것이란 게 당시 언론의 분석이었다.

2018년 독일 유력 주간지 슈피겔서 보도한 ‘재거의 국경’.

퓰리처상 심사위원이자 25년간 오레고니언 편집장을 맡았던 잭 하트의 설명은 이렇다.

“독자가 스토리 텔링에 의한 정보 전달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독자가 믿어주기만 한다면 제아무리 최고의 픽션인들 논픽션의 상대가 되지 않아요.”(‘논픽션 쓰기’에서)

◆논픽션 작가의 숙명 ‘진실 논란’

단단한 서사를 가진 내러티브 논픽션은 영상물로도 가지를 뻗곤 한다.

지난해 넷플릭스가 공개한 오리지널 시리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2016년 퓰리처상 해설보도 부문 수상작인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An Unbelievable Story of Rape)’를 각색한 것이다.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와 마샬프로젝트 기자들이 협업해 쓴 이 기사는 2008년 괴한에 성폭행당한 여성 청소년이 되레 허위신고 혐의로 형사 처벌된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써 커다란 공분을 끌어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진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미국에는 이 밖에도 ‘워터게이트 사건’을 그린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이나 볼티모어 경찰서를 다룬 TV시리즈 ‘강력계, 거리 위의 생사’(1993), 미국의 소말리아 공습을 그린 영화 ‘블랙호크다운’(2001), 미식축구 선수 마이클 오어가 등장하는 ‘블라인드 사이드’(2009), 저널리스트의 희귀병 극복 이야기 ‘브레인 온 파이어’(2017) 등 언론 보도나 논픽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 무수히 많다.

물론 이처럼 완결성 있는 스토리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저 사실만 줄줄이 늘어놓는다고 서사구조가, 문학성이 생길 리 없다. ‘논픽션’ 타이틀을 달기 위해선 최소 수개월에 이르는 방대한 취재가 기본이다. 이는 거꾸로 논픽션에 늘 따라붙는 ‘진실 논란’의 이유이기도 하다. 완벽한 서사를 갈구하는 작가적 욕구가, 딱 떨어지지 않는 현실과 만나게 되면 많은 경우 그릇된 결과를 낳았다.

1980년 9월28일 워싱턴포스트 1면에 실린 뒤 퓰리처상까지 받은 피처기사 ‘지미의 세계(Jimmy's World)’는 마약에 취한 8살 지미의 삶을 눈에 보이듯 생생한 언어로 그려내 단박에 동정 여론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나중에 드러난바 지미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모두 기자 재닛 쿡이 지어낸 허구였다.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피겔도 2018년 멕시코와 미국 접경지역에서 독일계 미국인이 난민을 사냥한다는 내용의 르포타주 기사 ‘재거의 국경(Jaeger's border)’이 조작으로 드러나 곤욕을 치른 바 있다.

2016년 재심 무죄를 선고받은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누명 피해자들의 기구한 삶은 언론보도에 이어 최근 드라마로 각색돼 방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냉혈한’ 집필 당시 수백명을 인터뷰하면서도 녹음기나 노트를 일절 쓰지 않았던 카포티 역시 늘 논란의 중심에 놓였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작가 로이 피터 클라크는 “픽션과 논픽션 사이엔 절대 흐릿하지 않은 확고한 구분선이 있다. ‘더하지 말라’와 ‘속이지 말라’는 원칙은 항상 모든 논픽션에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지개 켜는 논픽션 작가들

그런데도 논픽션은 여전히 매력 있다. 대중성은 물론 세계적인 흐름을 놓고 봤을 때 문학성도 점점 더 인정받는 분위기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1985)와 ‘체르노빌의 목소리’(1997)는 생존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뼈대로 한다는 점에서 논픽션 장르로 분류된다. 스베틀라나는 그가 주창한 ‘목소리 소설’에 대해 “나는 실제 삶에 가능한 한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문학 방법을 찾아 왔다. 그래서 실제 사람의 목소리와 고백, 증언과 증거서류를 활용하는 이 장르를 채택했다”고 설명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논픽션 작품 ‘지연된 정의’(2016), ‘두 얼굴의 법원’(2019), ‘노랑의 미로’(2020).(왼쪽부터)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현직 기자와 기자 출신 작가들을 중심으로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2018), ‘두 얼굴의 법원’(2019), ‘노랑의 미로’(2020) 같은 논픽션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논픽션에 대한 높아진 관심은 문학계에서도 포착된다. “논픽션을 서사문학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로 지난 10월 창간한 계간 ‘에픽’은 르포타주와 메모어, 구술록 등을 두루 다루는 서사 중심 문예지를 표방한다. 그 창간 배경에는 우리 출판시장에서 논픽션이 가진 모호한 지위와 문단에서의 폄하적 시선 등에 대한 문제의식도 담겨 있다.

임경섭 ‘에픽’ 편집장의 말이다.

“2010년 이후 우리 문학계에서 르포(논픽션)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 비해 관련 논의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픽션과 논픽션은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죠. 장르 경계가 허물어지는 세계적 흐름에 맞춰 우리도 문학의 범주를 보다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리스
@yoorak_coffee_ro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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