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산미, 커피
2024.06.01  ·   by 크리스

여러분은 산미酸味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분명 호好보다 불호不好 쪽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미식의 세계에서 산미, 그러니까 신맛은 꽤 융숭한 대접을 받곤 합니다.

몇 년 전 우연찮은 기회로 '오마카세'라는 주제로 <스시 코우지>의 코우지 셰프를 인터뷰한 적(정확하게는 이슬기 셰프 인터뷰였습니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오마카세가 낯선, 입문자분들에게는 20만원이 넘는 하이엔드 스시야보다 미들급, 엔트리급을 더 추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산미 때문이었습니다. 매니아 층으로 갈수록 샤리(밥) 등의 간이 세고 전체적인 산미가 강조되는 탓에 초심자들이 "가격이 이렇게 비싼데, 맛이 뭐이래!" "왜 이렇게 셔!" 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였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가격이 저렴할수록 단맛 쪽이, 비싸질수록 산미가 부각된다고 합니다.

사실 신맛이 미식 트렌드의 중심에 선 것은 인류 역사에 비춰보면 꽤 이례적인 일입니다. 오랫동안 신맛이란 경계의 맛, 위험의 맛이었습니다. 인류는 신맛을 통해 음식 안 미생물이 자라 부패했을 가능성을 가늠하곤 했습니다. 부패해 비린내가 심해진 고기나 생선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다버렸던 까닭입니다.

신맛이 각광받는 이유를 바로 이 지점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신맛은 단맛이나 감칠맛처럼 호불호 없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그런 대중적인 맛이 아니기 때문에 더 가치있다는 것입니다. 신맛을 동양인보다 몇 배는 둔감하게 느끼는 서양인들의 음식이 '고급스러운 맛'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신맛=고급'이란 인식이 생겼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일리 있는 접근입니다.

아시겠지만 커피 역시 매니아층으로 갈수록 산미가 중요해집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커피를 평가할 때 흔히 등장하는 '말릭산'이니 '시트릭산'이니 '타르타릭산'이니 하는 것들은 커피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산미와 관련한 물질(유기산)은 아주 미량이라 인간의 혀가 감지하고 구분해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커피에서 이런 신맛들을 척척 구분해내는 것일까요? 이는 커피의 향과 입안을 자극하는 물리적 감각이 우리 기억 밑바닥에 각인된 어떤 맛을 떠올리게 하는 것뿐입니다. 말하자면 혀의 교란, 뇌의 착각인 셈입니다.

커피의 산미를 처음부터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마시다보면 어느 순간 산미 없는 커피가 왠지 앙꼬 없는 찐빵처럼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오늘 하루쯤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가 아닌, 스페셜티 커피 한 잔 어떠신가요?

크리스
@yoorak_coffee_roasters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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