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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문학은 쓸모 없다는 점에서 쓸모 있다"는 문학평론가 김현의 주장을 소개했습니다. 사실 김현의 말은 절반만 맞는 얘기입니다. 문학은 잘 뜯어보면 요긴하게 써먹을 구석이 많습니다. 적어도 하루키만큼은 그렇습니다.
일단 종잇장처럼 얇고, 하찮기 그지 없는 우리의 문학적 소양을 남들에게 쉽게 들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는 척'까진 못 가더라도, 상대방으로부터 '흠.. 이 사람, 전혀 대화가 되지 않잖아!' 같은 처참한 평가는 피할 수 있습니다. 커피 쪽에서 게이샤 하나만 알아도 중간은 가는 것처럼, 하루키 하나만 알아도 문학에 대한, 혹은 문화에 대한 지적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사실 전업 문학평론가가 아닌 이상 하루에도 수십명씩 쏟아지는 국내외 그 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알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루키는 남다른 '가성비'를 자랑합니다.
하루키를 읽으면 국내 문학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얹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아니든 한때 하루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는 전세계가 하루키의 시대였습니다. 국내에서도 유명 작가들끼리 서로 네가 하루키를 베꼈니, 안 베꼈니 다투다 법정 소송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루키 하나만 파도 "내 생각에 이 작가는 하루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 "그 작가는 동시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하루키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걸." 같은 말을 슬쩍 던질 수 있게 됩니다.
'얇고 넓은 지식'이 늘어나는 뜻밖의 소득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루키는 전세계가 알아주는 록과 재즈의 고수. 집착에 가까운 마라톤(운동) 사랑은 물론, 수십년 동안 전세계 각지를 열심히 돌아다니며 관찰한 바를 활자로 반드시 남기는 기록광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루키는 쉽고 재밌게 에세이를 씁니다. 은근한 개그 욕심으로 가득한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마치 내가 그곳에 가 있는 듯한, 옆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즉, 어떤 분야의 '정점'에 선 사람의 경험을 ~~날로 먹을 수~~ 아주 값싸게 얻을 수 있는 셈입니다.
문장을 쓰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하루키는 부지런합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4~5시간 동안 글을 씁니다. 수십년 동안 매일 활자만, 문장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글이, 문장이 어떻겠습니까. 평가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전업 작가가 아니라면, 길바닥에 주먹만한 금덩어리가 마구 굴러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줍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문장이, 그의 작품에는 발에 치일 정도로 널려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루키는 통찰력 있습니다. 한때 유행한 "소확행"이 <랑겔한스 섬의 오후>라는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처음 나온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이 책이 나온 게 199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그가 여러 길목에서 던진 창들은 여러 시대를 관통해 지금의 우리를 지나치고 있습니다.
몇 가지 더 생각나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은 논픽션을 쓰려는 사람으로서 바라보는 하루키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