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락에서 게이샤를 쓰는 이유
2024.05.24  ·   by 크리스

게이샤는 커피계의 아이폰입니다.

등장과 동시에 업계를 뒤집어놓은 아이폰처럼, 게이샤의 등장은 전세계 커피 시장의 트렌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진하고, 쓰고, 고소함만 강조하던 다크로스팅에서 원두 고유의 풍부한 향미와 산미를 살리는 라이트로스팅으로 흐름이 틀어진 것입니다. 'tea like', 'floral', 'herbal' 같은 노트들이 크게 유행하게 되는, 이른바 "게이샤 쇼크"입니다.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지금처럼 커지게 된 데 역시 게이샤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게이샤라는 품종이 처음부터 이런 대접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1930년대 처음 발견되었지만, 이후 60여년 동안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습니다. 재배 조건이 까다롭고, 수확까지 기간이 다른 커피에 비해 2배가량 오래 걸리며, 수확량도 적었기 때문입니다. 수십년 동안 푸대접을 받던 게이샤는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파나마 서쪽 바루 화산 산기슭의 에스메랄다 농장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며 손으로 직접 커피 체리를 따고 가공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농장입니다.

유락yoorak의 핵심 키워드는 '재발견', '재해석', '재생산'입니다. 유락의 모든 프로젝트는 이 세가지 키워드 위에서 기획되고, 만들어집니다. 가오픈 기간부터 굳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의 게이샤를 고집했던 것은 이 커피에 담긴 내러티브가 유락이 추구하는 지향점과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세상에 게이샤 못지 않게 훌륭한 커피는 많습니다. 그럼에도 게이샤가 최고의 대접을 받는 것은 고급스러운 맛에 더불어 커피 안에 이런저런 스토리가 꾹꾹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아이폰을 쓰고 계시다면, 아이폰을 쓰는 감각으로 파나마 게이샤를 드셔보시기 권해드립니다. 불쑥 어떤 영감이 찾아올 지도 모를 일이니 말입니다.

(사실 아이폰도 새로운 기술은 없었습니다. 기존에 있는 것들을 절묘하게 재배치한 결과물이었을 뿐입니다. 즉, 재발견하고, 재해석하고, 재생산한 셈입니다.)

크리스
@yoorak_coffee_roasters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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