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 법관징계 리포트
2024.09.04  ·   by 크리스

1-1. 비위법관 그들만의 ‘물징계’

탄핵은 일반적인 절차로는 파면할 수 없는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한 가장 무거운 징계 제도다. 헌정 사상 첫 현직 법관 탄핵소추를 놓고 찬반 양론이 뜨거운 이유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탄핵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사법부로선 치욕스러운 사태이지만 자초한 측면이 크다. 국민 신뢰를 저버린 법관에 대한 징계 잣대 자체가 엄정하지 않고, 그마저 제대로 갖다 대지 않은 게 관행처럼 굳어진 지 오래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가 곪을 대로 곪아 터진 게 최근 법관 탄핵과 김명수 녹취록 논란이다. 현행 법관징계제도의 실태와 문제점을 진단하고, 선진국 사례와 개선 방향 등을 3회에 걸쳐 짚어 본다.

징계 사례 43건 중 38건 ‘위신실추’ 최다
정직·감봉·견책뿐… ‘솜방망이’ 징계 그쳐
징계 후 법복 벗고 1∼2년 내 변호사 개업
항명 등 법원 내부 사안엔 중징계 ‘엄정’

법적으로 제정된 ‘법관 징계기준’ 없고
재판 독립 위한 신분보장 ‘보호막’ 작용
5년 전 ‘정직 6개월 ↑ 연금 감액’ 추진
정권 바뀐 이후 개선된 제도 별로 없어

1993년 김영삼정부 출범 직후 이뤄진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는 사법부를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이었다. 대규모 땅투기 의혹에 휩싸인 김덕주 당시 대법원장 등 법관 십수명이 법복을 벗었다. 법원에 대한 국민 신뢰가 바닥을 쳤고, 이는 1995년 6월 법관윤리강령 제정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법관윤리강령은 법관 윤리를 제고하고 재판 신뢰를 회복할 획기적인 조치가 될 것입니다.”(최종영 당시 법원행정처장)

법관 윤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형성된 것도 바로 그 즈음이었다. 윤리강령 제정 직후 헌정 사상 첫 법관 징계가 이뤄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징계는 조직의 도덕성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로부터 25년, 법원은 과연 국민 염원대로 모범을 보여 왔을까.

7일 세계일보 취재팀이 공무원 징계 및 윤리 전문가들과 함께 1995년 이후 25년간 법관 징계 43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는 실망스럽다. 법관이 아닌 이들의 잘못에 엄정했던 법원은 ‘제 식구’들의 잘못에는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사법부 수장이 약속한 징계 법관에 대한 공무원 연금 삭감 등의 대책도 ‘공염불’에 그쳤다.

◆43건 중 38건 ‘위신 실추’… 수뢰·향응 최다

1956년 제정된 법관징계법은 법관이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리거나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을 때 징계하도록 해놓았지만 40년 가까이 유명무실했다. 물의를 일으키면 징계 대신 법복을 벗고 나가는 게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첫 징계 대상은 1995년 8월 이선희 서울가정법원 판사였다. 그는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남편의 선거운동을 도왔다가 법원의 위신 실추를 이유로 ‘감봉 6개월’ 징계를 받았다. 전체 43건(정직18건·감봉16건·견책9건) 중 이 같은 ‘위신 실추’가 38건이었고, 비위 유형은 뇌물수수와 음주운전, 성비위, 폭행, 막말 등으로 다양했다.

징계 법관 42명 중 21명이 남성 부장판사였고, 징계 당시 나이(평균 43.2세)는 30대가 12명, 40대가 24명, 50대가 6명이었다. 최고령과 최연소는 각각 57세(뇌물수수), 31세(지하철 몰카)였다. 징계 이후엔 대체로 법복을 벗었다. 수감자와 현직을 제외한 28명 중 14명이 징계 후 1년, 5명이 2년 이내에 변호사로 개업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이규진 전 부장판사만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른 공무원은 ‘무조건 파면’인데 법관은 ‘정직’

“이건 뭐, 솜방망이나 다름없네요….”

분석에 참여한 전문가 3명은 법관 징계를 다른 공무원 징계 사례와 비교 분석한 뒤 한목소리로 “징계 수위가 눈에 띄게 낮다”고 평가했다. 3명 모두 43건 중 13건(30.2%)은 ‘(다른 공무원 징계와 비교해) 약하다’고 판단했다. 3명 중 2명이 ‘약하다’로 판단한 건은 13건이었다. 3명 모두 ‘평이하다’고 본 건 배우자 상해(정직 2개월) 등 3건뿐이었다.

법원은 특히 법원 바깥에서 저지른 비위에 온정적이었다. 대법원 공고에 따르면, 2019년 5월 김모 서울남부지법 판사는 혈중알콜농도 0.163%의 만취 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2018년 12월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 시행 이후였지만 대법원 결정은 감봉 2개월에 그쳤다. 이는 같은 해 3월 국토교통부 국장급 간부가 음주운전(0.151%)으로 정직 1개월을 받은 것과 대비된다.

장모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2016년 11월 음주운전을 하다가 고속도로에서 차량 2대를 친 뒤 달아났다. 인적 피해를 낸 음주뺑소니는 당시 공무원징계령 기준으론 최소 정직, 현재 기준으로 최소 해임인 중대범죄이지만 법원은 감봉 4개월로 매듭지었다.

반면 법원 내부 잡음엔 엄정했다. 2007년 10월 정영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부적절 처신 판사들이 징계 없이 요직으로 발령되고 있다”며 대법원장 징계를 주장하다가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는 공판검사 성추행(정직 1개월)이나 택시기사 폭행(감봉 6개월)보다 수위가 높았다. 강호석 인천시 행정심판위원(변호사)은 “표현의 자유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정직까지 내린 것은 과도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들쭉날쭉한 징계수위는 법관 징계에 관한 양정기준이 법원 내부에 따로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유봉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법관은 징계기준이 법적 형태로 제시되어 있지 않은데, 변호사와의 이해충돌이나 재판 관련 정보 취급, 정치적 의견 표명 등에 관한 징계기준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해선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오정일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다른 공무원과 비교한다면 상급자에게 하는 정보보고가 기획업무에 속할 수 있다”며 수위가 강했다는 의견을 냈고, 나머지 2명은 대체로 약했다고 판단했다.

재판 독립을 위한 신분보장 조항은 사실상 비위 법관들의 ‘보호막’으로 작용했다. 2015년 이후 억대의 뇌물수수로 구속된 최민호·김수천 판사에게 내려진 징계는 정직 1년이 전부였다. 2015년 정부는 100만원 이상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무조건 파면’ 하도록 법을 바꿨으나 법관은 예외였다. 그해 뒷돈 516만원을 받은 50대 경찰은 원칙에 따라 파면됐다.

파면·해임이 공무원에게 치명적인 이유는 추후 공직 임용이 제한되고 연금과 퇴직수당이 크게 깎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법관들은 다른 공직자보다 비난 가능성도 크고 더 무거운 죄를 저질러도 불이익은 더 적게 받는다는 얘기다.

◆연금 삭감으로 ‘제머리 깎겠다’더니

사법부도 이런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다. 2016년 뇌물수수로 현직 판사가 구속되자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정직 6개월 이상 법관의 연금 감액 등 각종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국회 탄핵소추가 필요한 파면 조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그에 준하는 징계 규정을 마련해 법관들의 일탈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여태껏 연금 감액을 비롯해 비위 법관의 재판 배제 조치 등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다른 공무원들처럼 징계부가금을 5배로 높인 게 사실상 전부다. 법원행정처 측은 “당시 추가 검토 후 현실적인 여러 문제로 연금 감액 등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맞다”며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 신설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2. 뇌물·성추행 걸려도 법복 벗으면 끝… 관대한 내부 잣대

“적어도 누가 연루됐는지는 시민들이 알아야 되잖아요. 하긴, 법원이 당사자인데 공개하고 싶을 리가 없죠.” 지난달 13일 취재팀과 만난 김태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는 검찰이 2019년 3월 “사법농단에 연루됐다”며 법원에 건넨 판사 66명의 명단이 여태껏 공개되지 않고 있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2019년 ‘66명 명단과 비위내용을 알려달라’며 수차례 법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이의신청을 포함해 모두 비공개 통보를 받았다. 모든 시도가 허사가 되자 지난해엔 “명단 비공개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는 왜 명단 공개에 매달리고 있는 걸까.

“그동안 사법부는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을 여실히 보여줬어요. 사법농단을 ‘위헌적 행위’라고 못 박고도 여태껏 징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대표적이죠. 이대로라면 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넘어갈 게 뻔해 보이네요.” 그의 말에선 법원에 대한 불신이 묻어났다. ‘잘못한 사실이 드러나면 바로 법복 벗고 나가기’라는 법원의 오랜 관행은 이런 불신을 키운 주범이었다.

◆징계 없이 사표 수리, 최소 32명

7일 취재팀이 학계 연구를 토대로 언론보도들을 확인한 결과, 사법부 불신의 일단이 드러났다. 1990년 1월 이후 언론에 보도될 정도의 비위나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물의를 일으켰으나 징계가 청구되지 않은 법관 사례가 최소 55건은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중 절반이 넘는 32명이 사표를 냈고, 대법원은 징계 없이 사표를 수리했다. 나머지는 구두 경고나 주의, 전보 조치로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징계청구 사안에 대한 판단은 사안의 성격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언론에 보도됐다고 무조건 징계감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헌법기관이자 인권과 정의 수호의 마지막 보루로서 사법부와 법관의 존재 이유를 감안했을 때 납득이 어려운 사례가 적지 않았다.

다른 공직자였다면 무겁게 처분했을 금품·향응수수 등이 대표적이다. 취재팀이 취합한 55건 중 28건(50.9%)이 금품·향응 관련이었다. 2006년 조모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사건 청탁을 대가로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에게서 1억2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따로 징계가 청구되지 않았다. 사표를 내고 나간 그는 알선수재 혐의가 인정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같은 해 전주지법 군산지원에선 재판에 넘겨진 조직폭력배 출신 피고인의 동생으로부터 향응과 골프 접대를 받은 판사들의 사표가 대법원 조사 도중 수리돼 비판 여론이 고조됐다.

이에 대법원은 2006년 ‘법관의 의원면직 제한에 관한 예규’를 제정해 징계가 청구됐거나 수사 통보 혹은 직무상 위법행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사표를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듬해 폭력조직 출신과 어울려 필리핀 등지에서 골프 접대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 정읍지원 판사를 비롯해 예규 제정 이후 사표가 수리된 사건은 14건이었다.

2017년엔 ‘은폐 의혹’까지 제기됐다. 법원행정처가 검찰로부터 문모 부산지법 부장판사의 골프·유흥 접대 비위 정황이 담긴 문건을 전달받고도 구두경고로 매듭지은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다. 해당 판사는 지역 건설업자로부터 수년간 10여차례 룸살롱과 골프접대를 받았으나 징계가 청구되지 않았다.

성범죄 사건도 4건이나 됐다. 2011년 황모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감찰 착수 뒤 사의를 표명한 황 판사의 사표를 즉각 수리했다. “직무 관련 위법 행위가 아니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2015년 징계 없이 사표 수리된 유모 울산지법 판사는 대학 후배 성추행 혐의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 판사는 노래방에서 피해자의 민감한 부위를 만지고, 얼굴에 입을 맞췄다.

◆“알려지지 않은 사례 훨씬 많을 것”

언론에 알려진 것만 이 정도일 뿐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넘어 간 사례는 더 많을 것이란 게 법원 안팎의 관측이다. 그동안 꾸준히 불거진 판사 막말 논란만 봐도 그러한 짐작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2015년 이모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온라인 댓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투신의 제왕’에 비유하는 등 수천건의 막말 댓글을 달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법원 내부에서도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하지만 법원 결정은 전보 조치 후 사표 수리였다. 이밖에도 40대 판사가 69세 진정인에게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나오냐”고 말하거나, 피고인 대리로 나온 70대 할머니에게 “딸이 아픈가본데 구치소 있다 죽어나오는 꼴 보고 싶으십니까?” 등의 막말 사례가 꾸준했으나 징계로 이어지진 않았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봐주기 관행은 외국에도 있으나 우리나라가 좀 심한 편”이라고 꼬집었다.

◆고위법관의 징계 재량권 줄여야

이런 관행들의 근저엔 ‘법복을 벗는 것이 곧 중징계’라는 사법부의 그릇된 인식이 깔려있다. 일부에선 법관에 대한 법원의 징계청구권과 결정권 독점이 제식구를 감싸게 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징계위원 구성 다양화 등을 통해 징계에 대한 법원 고위층의 재량권을 축소하고 징계 절차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징계위원회에 외부위원보다 법관이 한 명 더 많아 법관들의 의견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며 “외부위원을 실질적으로 꾸려 제대로 된 심의를 할 수 있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55건의 비위 내용은 온라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 1995∼2019년 데이터 취합 전문가 3인에 분석 의뢰

세계일보 취재팀은 관보에 오른 ‘대법원공고(징계처분)’에서 1995∼2019년 이뤄진 43건의 법관 징계 데이터를 취합한 후 공무원 징계 및 윤리 전문가 3인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에 참여한 강호석 변호사는 2018년 1월부터 인천시 행정심판위원으로서 공무원 징계처분의 적절성 등을 심사하고 있다. 오정일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경상북도 소청심사위원회에 접수된 징계 사건 303건을 토대로 공무원 징계제도를 분석한 바 있다. 이유봉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직윤리 강화를 위한 공직자윤리법 정비방안’(2015) 등을 펴낸 공직윤리 전문가다.

이들에게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법관과 타 공무원의 징계수위 비교 및 전반적인 평가, 개선 방향 등을 요청했다.

징계 법관들의 당시 직급과 사법연수원 기수, 변호사 개업 시점, 나이, 성별 등은 대한변호사협회와 법조인 정보 사이트 등을 통해 확인했다. ‘무징계 법관 사례’는 박준 전 서울대 교수의 ‘법관·검사 징계 사례에 관한 연구’(2014) 논문을 참고했다.

논문과 뉴스분석 시스템 ‘빅카인즈’,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등을 통해 1990년 1월 이후의 사례 55건을 취합했다.

개별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은 없었으며 다수의 언론이 비판적으로 보도한 경우만 특정해 집계했다.

*<탐사기획- 법관징계 리포트> 시리즈(총 3화) 1화에 실린 기사들입니다.

크리스
@yoorak_coffee_ro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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