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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그들의 죗값] /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 사이트 / ‘W2V’ 운영자 잡고보니 한국인 / 한국 법원, 징역 18개월 선고 / 美서 잡힌 구매자는 72개월형 / “현실적인 법·대책 마련 시급”
여기, 두 남자가 있다. 또래인 둘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춘다.
한 사람의 이름은 홍성민(미국명: Phillip Sung-min Hong). 현재 나이 26세.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인구 1만7000명의 자그마한 도시 샤론(sharon)에 산다. 2018년 7월, 그의 이름이 샤론의 한 지역지에 실렸다. 기사 제목은 ‘샤론 사람이 비트코인으로 아동포르노를 샀다(Sharon Man Allegedly Bought Child Porn With Bitcoin)’ 그해 3월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홍씨를 체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그렇다. 그는 지난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웰컴 투 비디오(W2V)’ 사건의 미국 검거자다.
또 한 사람은 홍씨보다 두 살 어린 손정우, 그 W2V를 만든 장본인이다. W2V는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을 기반으로 한 전 세계 최대 규모 아동성착취 커뮤니티였다. ‘중복 없는’ 영상 20만건이 모조리 아동성착취물이었고 아예 “성인영상은 올리지 말라”고 했다. 12살, 10살, 5살… 심지어 영·유아에 대한 몹쓸짓 영상이 가상화폐로 거래됐다. 유·무료 회원 수는 128만명. 손씨가 챙긴 수익은 4억원이 넘었다. 그는 32개국 공조수사 끝에 결국 덜미가 잡혔다.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19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아동성착취물을 소지한 혐의로 기소된 홍씨는 별다른 전과가 없었음에도 미국 법원으로부터 지난해 10월 징역 60개월에 우리의 보호관찰 격인 의무가석방 7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한국 법원이 손씨에게 선고한 형량은 고작 18개월이었다. 이마저 1심은 집행유예였고 항소심에 가서야 실형이 선고된 것이다. W2V 국내 검거자 235명 중 유일하게 실형을 산 그는 오는 27일 출소한다.
이런 차이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 ‘그들’은 과연 온당한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일까. 최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n번방’ 가담자들의 처벌도 지금으로선 이와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법원은 ‘갓갓’으로부터 n번방을 물려받아 수천건의 아동성착취물을 팔아 검은돈을 챙긴 30대 남성 ‘켈리’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법도 그대로, 양형기준이 없는 것도 그대로였으니 ‘예고된 결말’인 셈이다. 해당 남성은 이마저 “형량이 과도하다”며 항소장을 냈다.
이현숙 청소년성폭력상담소 ‘탁틴내일’ 대표는 “지금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아동성착취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 사회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제는 정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법과 대책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상〉 아동성착취 ‘W2V’ 국내 판결 43건 분석 / 검거 W2V회원 235명 중 43명만 기소 / 양형기준 없어 솜방망이·고무줄 판결 / 성착취물 17건 소지자 500만원 벌금형 / 33건 소지자는 선고유예 등 차이 보여 / 아동기관 취업제한 명령도 단 10명 그쳐 / 법원 ‘자백·반성’ 등 이유 기계적 감형 / 법조계 “자수한 것도 아닌데 이해 불가” / 대법 새 양형기준 추진 ‘기대 반 우려 반’ / “국민 기대치 충족할 파격안 안 나올 듯”
사이버공간의 그늘 속에서 ‘아동성착취물’ 범죄가 최근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어른들이 깨닫지 못한 사이 ‘웰컴 투 비디오(W2V)’와 손정우는 ‘n번방’과 조주빈으로 이름만 바뀌어 우리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허술한 보호 체계를 보면 전세계 최대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운영자가 한국인이었던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잠시 사라질 수는 있지만 언제든지 방심을 틈타 또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이에 세계일보는 n번방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는 W2V 피의자들이 한·미 양국에서 받은 사법처리 결과를 비교해 한국의 양형 체계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살펴봤다.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n번방 사태 이후 온라인 성착취물의 유통실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 등도 3회 시리즈로 짚어본다.
“아동청소년 16명 등 피해 여성들에게 대통령으로서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잔혹한 아동성범죄가 자행된 ‘n번방’ 사건으로 국민여론이 들끓자 지난달 청와대가 내놓은 답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담자 전원 조사와 엄벌’을 언급하자 경찰은 부랴부랴 철저 수사를 다짐했고, 검찰은 “무기징역”까지 거론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n번방과 조주빈(25·구속기소)을 키워낸 그들, 그러니까 가상화폐를 이용해 비뚤어진 성욕구를 분출한 가담자들에 대한 처벌은 아무래도 국민 염원과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검찰이 아무리 높은 형량을 구형하더라도 선고를 내리는 것은 결국 법원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아동성착취물 커뮤니티였던 ‘웰컴 투 비디오(W2V)’ 회원 판결에서 드러난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 현상은 n번방 가담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W2V를 운영한 손정우(24)가 벌써 ‘죗값’을 다 치르고 27일 출소한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현재 우리의 사법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W2V 검거자, 솜방망이·고무줄 판결만
19일 세계일보 취재팀이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함께 W2V 회원들의 사법처리 결과를 추적한 결과, 경찰에 검거돼 법원 선고까지 이어진 것은 운영자 손씨를 포함해 43명뿐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경찰이 범죄 혐의를 확인하고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한 것이 217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과 5분의 1만 처벌받은 셈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사안이 경미해 재판까지 넘길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거나, 디지털 범죄 특성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불기소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직접 기소해야 하는 검찰의 판단은 경찰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애초 이 사건 검거자들이 W2V에 가상화폐를 송금한 사실을 토대로 특정됐다는 점에서 다소 납득이 어려운 결과란 지적이 나온다.
이마저 판결은 ‘솜방망이’ 일색이었다. 취재팀이 입수한 1심 판결문 42건을 보면, 징역형이 내려진 경우는 단 1건도 없었다. 현재 복역 중인 손씨도 1심에선 집행유예가 선고됐다가 지난해 5월 항소심에서 1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벌금형이 34건으로 가장 많았고, 집행유예가 7건, 선고유예가 1건이었다. 이들에게 내려진 벌금액 평균은 305만8000원으로, 법정형 1000만원에 한참 못 미쳤다.
수사기관 추적을 피하려 다크웹과 암호화폐 등 고도화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아동성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법원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W2V의 경우 전 세계 32개국 수사기관의 공조수사 끝에 가까스로 잡아낸 것이었으나 재판부의 고려 대상이 되진 못했다.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이 따로 없는 탓에 형량은 ‘고무줄’이나 다름없었다. 2018년 10월 원주지원은 W2V를 통해 아동성착취물 17건을 소지한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반면 한 달 뒤 33건 소지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는 선고유예(영월지원)가 내려졌다.
아동성착취물을 3813건 소지한 혐의로 기소된 C씨(전주지법)에게는 벌금 300만원이, 각각 437건, 1080건을 소지한 D씨와 E시(부천지원)에겐 동일하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등 대중이 없었다. 212건 소지로 300만원을 선고받은 경우(청주지법)도, 165건 소지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경우(부천지원)도 있었다. 같은 법원(서울남부지법)에서도 45건 소지 벌금 200만원, 94건 소지 벌금 200만원 등 차이를 보였다.
아동기관 취업제한 명령도 단 10명뿐이었다. 손씨도 항소심에 가서야 비로소 취업제한 명령이 추가됐다. 이 사건 검거자가 235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전체의 4.2% 수준이다. n번방을 운영하면서 보육원을 기웃거린 조주빈이 그랬듯 ‘그들’이 지금도 얼마든지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판결문엔 기계적인 감형요소만
‘죄질이 대단히 불량하지만 초범이고 자백, 반성했으므로 감형한다.’
W2V 판결문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감형 논리다. 피의자 측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인 것인데, 전문가들은 ‘기계적인 태도’라고 지적했다. 국제수사를 통한 가상화폐 송금 사실과 압수수색으로 증거물이 확보된 상황에서 받는 자백과 반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거다. 법무법인 온세상 김재련 변호사는 “피의자들이 자발적으로 신고해 검거된 것도 아닌데 자백과 반성 등 이유로 감형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판결문에는 양형 기준 때문에 고민하는 판사들의 현실적인 고충도 일부 드러난다. 양형기준이 따로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높은 형량을 선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구지법의 한 판사는 “피고인의 범행 기간이 길고 내려받은 음란물이 매우 많으며 적지 않은 비트코인을 지불한 점을 고려할 때 변태적인 성적취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으나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부천지원 한 판사는 “매우 어린 아동이 등장하는 음란물로 그 음란의 정도가 특히 심각하며 한순간의 실수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유사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양형과의 형평성’ 등을 들어 벌금형을 내렸다.
◆“현실적인 대책 고민할 때”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비판이 거세지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오는 6∼7월 공개를 목표로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을 만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양형기준 신설로 이제 ‘그들’에 대한 온당한 처벌이 가능해지리라 보지만, “국민 법감정과 거리가 먼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과거 양형위원을 역임한 한 법조계 인사는 취재팀과 만나 “양형기준은 최근 수년간 내려진 선고 형량의 ‘평균값’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며 “양형위 자체가 대단히 보수적이어서 국민 기대처럼 파격적인 안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형기준이 답이 될 수 없다”는 거다.
실제로 지난달 대법원 젠더법연구회 판사 13명은 법원 내부망을 통해 “이대로 양형기준이 마련된다면 피해자는 물론 일반 국민도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법원이 지금 만들고 있는 양형기준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양형위가 양형범위에 참고하기 위해 판사들에게 돌린 설문에 제시된 양형 범위가 법정형에 비해 지나치게 낮게 설정돼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판사들은 “성 착취에 있어 승낙이나 계약이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은 노예제에서나 용인될 법한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시각이 엇갈리는 만큼 양형기준이 나오더라도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최근 양형기준 신설과 관련한 국민 2만여명의 의견을 모아 대법원에 전달한 김영미 변호사는 “국민들이 느끼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의 심각성은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며 “지금처럼 전적으로 판사 재량에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범죄 피해를 감안한 합리적인 양형기준 수립과 법 체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동음란물 시청·범행 상관관계 매우 높아”
“잔혹한 아동성범죄를 저지른 조두순, 김수철은 범행 직전 아동성착취물을 다수 시청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동성착취물 시청과 범행의 인과관계까지 밝혀지진 않았으나 대단히 높은 수준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2012년 법무부 의뢰로 ‘아동음란물과 성범죄의 상관관계 연구’를 수행한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제협력실장의 말이다. 그는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아동성착취물 분야가 범죄자들에게 ‘탐나는 시장’이 돼 버렸다고 설명했다.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제협력실장
“20대 초·중반인 손정우, 조주빈이 불과 몇 년 새 벌어들인 돈이 수억, 수십억원이라고 하죠. 그 나이에 어디 가서 그런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이번을 계기로 새롭게 이 범죄에 손을 대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예요. 재범가능성도 높죠.”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특히 아이들에게 치명적이다. 과거 은밀하게 이뤄졌던 범죄 커뮤니케이션이 다크웹·텔레그램 등을 바탕으로 사실상 양지화됐고, 이로 인한 정보공유와 죄의식 희석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서다. 윤 실장은 “과거에는 아동성착취물이 있다 해도 다른 구매자를 찾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손쉽게 수요자를 찾을 수 있다”며 “수요와 공급이 서로 맞물리면서 거대한 ‘시장’이 만들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조주빈은 경찰 수사망이 좁혀듦에도 회원들에게 “절대 걸릴 일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물론 검거되긴 했으나 이는 그가 ‘무엇’인가를 학습한 결과일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사망을 피하는 수법은 더욱 교묘해질 전망이다. ‘일벌 백계’와 대책 마련이 더 늦어져선 안 된다는 얘기다.
윤 실장은 “집행유예나 벌금형만 선고하는 법원의 태도는 우리 사회가 이 사안을 어떻게 여기는지 드러내고 있다”며 “적어도 아동성착취 범죄만큼은 초범이나 반성, 자백 등 이유로 감형하는 일이 최소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세계일보 취재팀은 ‘웰컴 투 비디오(W2V)’ 국내 검거자의 사법처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수사기관과 법원을 취재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의 도움을 받아 경찰청으로부터 ‘W2V 사건 이용자에 대한 각 지방검찰청별 송치현황’을 입수, 전체 송치자 235명 중 217명이 기소의견 송치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개별 사건 기소현황을 알려주기 어렵다”는 검찰 측 입장에 따라 법원도서관 판결정보특별열람실을 이용해 판결문에 접근했다. 우선 이미 공개된 운영자 손정우 등 W2V 검거자 3명의 판결문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1차 판결문 검색 작업을 벌여 거의 대부분 판결문에 기재된 W2V 접속 인터넷주소(URL)와 일부 판결문에 나오는 오탈자가 담긴 URL 주소 등 키워드 20여개를 추렸다. 이후 혐의와 기간, 키워드 리스트를 바탕으로 2차 판결문 검색을 벌여 총 43건의 1심 판결문과 1건의 2심 판결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팀은 이 중 공개가 제한된 1건을 제외한 43건의 판결문을 사건번호를 근거로 의원실을 통해 대법원으로부터 입수했다. 여러 차례 확인 작업을 거쳤으나 일부 판결문은 검색 과정에서 누락됐을 수 있다.
[디지털 성범죄 그들의 죗값] ‘W2V’ 미국인 15명 판결문 등 분석 / ‘두 얼굴의 성범죄자’ 경각심 높일 목적 / 전과 없는 평범한 시민 되레 중형 경향 / 범죄자 교화·인권보다 아동 보호 중시 / 출소 뒤 직업·거주·PC 사용 엄격 통제 / 당국 승인 없인 스마트폰도 사용 못해 / 컴퓨터 관련 일자리·자원봉사도 불허 / 美, 33년째 디지털 성범죄 대응팀 운영 / W2V 운영자 韓선 혐의 2개·美선 9개 / “국내도 재범 막을 새로운 차원 규제를”
“피고인이 우리 사회의 일원(functioning member of society)으로 생활해왔다는 것은 우리가 체포 통계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웰컴 투 비디오(W2V)’에서 아동성착취 영상물 160여개를 내려받은 혐의로 미국 매사추세츠주 경찰에 붙잡힌 마이클 암스트롱(37)의 양형보고서에는 이 사안에 대한 미국 사회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국에선 영상 소지 사실이 드러나면 피의자의 평소 행실이나 초범 여부에 상관없이 엄벌한다. 그 자체로 성폭행에 가담했다고 보는 것으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가 녹아 있다.
아동인권 선진국으로 평가되는 미국은 우리와 얼마나 다른 걸까. 취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국적 정보기업 톰슨 로이터의 도움을 받아 W2V 사건 미국인 검거자 15명의 형사고발장과 공소장, 양형보고서, 판결문 등을 입수해 분석했다. W2V라는 ‘정확하게 동일한’ 범죄 검거자들에 대한 한·미 양국의 사법처리 결과 비교는 우리 법조계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분석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박예안 미국 변호사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한균 박사의 도움을 받았으며, 일부 검거자 사례는 미국 법무부 발표와 현지 언론보도를 참고했다.
◆미 법원, W2V 가차없이 엄벌
우선 미국은 피의자의 배경보다 범죄행위 자체에 주목해 엄벌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일부 케이스에서 초범이나 자백 등 이유로 검찰 단계(유죄협상제도) 구형량이 다소 줄어든 흔적이 보이기도 했으나, 이 역시 최소 형량인 60개월은 선고됐다. 우리처럼 집행유예나 벌금형만 선고되는 일은 전무했다.
370여건의 아동성착취물 수령 및 소지 혐의로 2018년 6월 검거된 빌리 페날로자(30)는 재판 과정에서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와 노숙인인 아버지 아래서 불우하게 자란 점, 그 역시 아동기(7세) 때 남자 사촌에게 성적학대를 당한 점 등을 강조했으나 법원이 이를 따로 참작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페날로자 측은 또 “구속되기 전까지 우버 운전기사로 한 달에 5000달러를 벌었다”며 ‘평범한 사회구성원’이었다는 점을 부각했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90개월의 실형이었다.
박예안 변호사는 “미국 사법당국은 전과가 없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충실히 생활해 왔다는 점을 오히려 높은 형량을 선고해야 하는 이유로 보았다”며 “우리 주변 누구라도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두 얼굴’의 성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기 위함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면 가중요소는 다양하고 구체적이었다. 아칸소주에서 검거돼 97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된 제임스 다오생(26)의 경우 영상물을 정리해 보관하고 있었던 점이 가중요소로 작용했다. 그의 USB드라이브에는 ‘유명하고 희귀한 컬렉션’, ‘미성년 소녀 사진’ 등 다양한 하위 폴더가 있었는데, 법원은 이를 근거로 “피고인의 영상물 소지는 충동의 산물이 아니다”라고 보았다. 그가 소아성애 관련 문서를 가지고 있던 점과 가학적인 이미지 파일이 포함돼 있었던 점, 토렌트 등 전문 기술을 사용한 점도 가중요소로 작용했다.
이밖에도 영상을 고의로 유통하거나 12세 미만의 아동이 나오는 경우도 각각 가중요인이 됐다. 아동성착취물을 600개 이상 소지할 경우에는 가중처벌됐지만, W2V에 1회 접근해 아동성착취물 1건을 내려받은 혐의로 기소돼 70개월형을 선고받은 전직 미 국토안보수사국(HSI) 수사요원처럼 소지물 개수가 적다는 점은 그다지 고려되지 않았다.
비트코인을 사용한 부분은 ‘자금세탁’ 혐의가 적용됐다. W2V를 운영한 손정우가 한국에서 ‘음란물 제작과 배포’ 혐의로만 기소된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아동성착취물 광고와 유통, 자금세탁 등 9개 혐의가 적용됐다. 한국 법원이 손씨에 유리한 정상으로 언급한 ‘회원들이 업로드한 영상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점’, ‘범죄수익이 환수될 것으로 보이는 점’이 미국에선 ‘공모’와 ‘몰수혐의’로 공소장에 별도 적시된 점도 눈에 띈다.
변화한 범죄 환경에 대한 높은 이해도 엿보였다. 영상 소지 혐의로 검거된 마이클 에지그버(22)의 양형보고서를 보면 “기술 발전으로 하드 드라이브 가격이 저렴해졌고 몇 초 만에 아동음란물을 수집하고 배포할 수 있게 됐으며 이는 범죄의 심각성과 타락성을 급증시켰다”, “범죄자들은 인터넷 활동 기록을 지우고 암호화하는 등 더 치밀해졌다” 등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범죄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박 변호사는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교화의 목적을 양형 요소에 반영하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더 무게를 두는 모습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출소 뒤 개인 컴퓨터도 허락하에 사용”
출소자의 기본권을 ‘철저히’ 제약하는 보호관찰 제도도 돋보였다.
W2V 판결문에 적시된 ‘의무가석방(supervised release)’ 조항을 쭉 살펴보면, 일단 피의자들은 보호관찰 기간 동안 당국의 감독과 허락 없이는 어떠한 미성년자와도 접촉할 수 없으며 아동 관련 직업도 가질 수 없다. 정신건강 치료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이에 따른 비밀유지권은 포기해야 한다. 이주민이라면 형기를 마치자마자 추방심사를 받는다.
W2V사건 주요 검거자들… 아동성범죄자 신상 적극 공개하는 미국 미국 언론과 머그샷 공개 웹사이트 등에 올라있는 ‘W2V’ 사건 미국 검거자들의 얼굴. 지난해 미국 법무부는 W2V 운영자 손정우 등 주요 검거자 36명의 실명과 나이, 주거지, 혐의 등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미국은 아동성범죄자의 여죄를 파악하고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신상을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언론 등 종합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자리나 자원봉사 등에 종사할 수 없도록 한 것도 눈에 띈다. 개인 컴퓨터마저 보호관찰관이 설치한 모니터링 프로그램 감시하에 사용이 가능했다. 보호관찰관은 키 입력, 응용 프로그램의 정보, 인터넷 사용 기록, 이메일 통신 및 채팅 대화 캡처 등 컴퓨터로 가능한 모든 활동을 제한하거나 기록할 수 있다. 사전통지와 감독관의 승인 없이는 인터넷 또는 사진 저장 기능을 가진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소유하거나 사용할 수도 없다.
신체와 거주이전의 자유 역시 강도 높게 제한됐다. 보호관찰관은 불시에 피의자의 신체 및 주거를 수색하거나 필요에 따라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수행할 권한을 가진다. 허가받은 장소에서만 거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사를 가려면 먼저 법원이나 당국의 허가가 떨어져야 한다. 근무처나 회사 내 직책이 바뀌었을 때, 동거인이 바뀌었을 때 보호관찰관에게 10일 내에 통보하는 조항도 있었다. 아울러 일부 케이스에선 치료와 감시 등에 따른 모든 비용을 피고인이 부담하도록 했다. 이런 조항들을 위반했을 땐 최고 10년형까지 내려질 수 있다.
미국 사회가 이처럼 철저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둔 것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 범죄자들의 기본권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과 연구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가 재범률이 높으며 아동피해자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미국은 1987년부터 법무부 범죄국에 ‘아동 착취 및 음란물팀’을 조직해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아동성범죄를 연구하고 대응해 왔다.
김한균 박사는 “미국 사람들이 이해한 것처럼 디지털성범죄는 재범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만 현재 우리의 체계에선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나 극히 드물게 적용되는 전자발찌 이외엔 이를 막거나 제어할 방법이 사실상 부재하다”며 “상습 음주운전자의 차량 몰수처럼 디지털성범죄에도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차원의 규제가 나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美, 관련 범죄자 99% 평균 8년8개월 실형
아동성착취물 범죄에 대한 미국의 엄벌 기조는 통계로도 고스란히 확인된다.
19일 취재팀이 입수한 미국 양형위원회 통계 보고서를 보면, 2018년 미국의 ‘아동포르노 범죄자(Child Pornography Offenders)’ 수는 총 1414명으로 집계됐다.
전년의 1403명과 비교해 소폭 증가했으나 2014년 1613명보다는 13.4%가량 줄었다. 이 통계에는 아동성착취물의 ‘밀매(trafficking)’와 ‘수령(receiving)’, ‘소지(possessing)’ 죄만 포함됐고, ‘제작(production)’ 죄는 빠져 있다.
2018년 기준 전체 아동성착취물 범죄의 99.1%는 평균 104개월의 실형이 선고됐으며, 밀매와 소지, 수령 혐의자가 각각 45.5%, 43.3%, 11.2%였다.
이들에게 적용된 형량은 최소 5년(49.1%), 10년(8.2%), 15년(7.4%) 순으로 많았고, 20년 이상(0.2%)도 있었다.
밀매 범죄자에게는 평균 136개월이 선고됐고 이 중 아동학대나 동종 전과가 있는 13.4%에게는 최소 15년형이 적용돼 평균 269개월이 선고됐다. 수령죄는 평균 105개월(전과자 2.9%·241개월), 소지는 평균 70개월(전과자 19%·138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전과가 아예 없거나 경미한 범죄 전력만 있는 경우가 76.5%로 가장 많았다. 형량은 전체의 37.2%가 양형범위 안에서, 62.8%는 바깥에서 결정됐다.
범죄자 대부분은 미국 국적(97.8%)의 남성(99.3%)이었으며 평균 연령은 41세였다. 지역별로는 텍사스 남부 지역이 5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버지니어 동부(51명), 미주리 서부(50명), 미주리 동부(38명) 순이었다. 인종별로는 백인이 83.3%로 가장 많았고, 이어 히스패닉(9.5%), 흑인(4.2%) 순이었다.
◆회원수 128만… 아동성범죄 영상 20만건 공유
‘웰컴 투 비디오(W2V·Welcome To Video)’는 손정우(24)가 2015년 6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운영한 아동성착취영상물 커뮤니티다. 수사기관의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을 기반으로 유료회원 4000여명을 포함, 총 회원수가 128만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아동성착취물 웹사이트였다. 손씨는 아예 “성인 영상물은 올리지 말라”고 공지하는 등 오로지 아동영상물만을 다뤘으며 ‘새로운 영상’을 올리면 포인트를 주는 시스템을 갖춰 범행을 부추겼다. 무려 8TB(테라바이트)에 달하는 20여만건의 영상이 모두 중복되지 않았다. 일부 회원들은 포인트를 얻을 목적으로 아이들을 실제 성폭행하고 이를 찍어 업로드했다.
한번 오른 영상물은 게시자도 삭제할 수 없게 했으며 사춘기 안팎 아동의 영상이 많았다. 손씨가 이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우리돈 4억원에 달했다. W2V는 영국의 소아성애자 매튜 팔더(32·닉네임 ‘666데빌’)에 대한 영·미 국제공조 수사과정에서 꼬리가 밟혔다. 미국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검거자 310명 중 228명(최종 송치 235명)이 한국인이었다. 미국 정부는 우리 정부에 출소를 앞둔 손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고 있으나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이다.
*<탐사기획- 디지털 성범죄, 그들의 죗값> 시리즈(총 3화) 중 1화에 실린 기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