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2006)
2024.07.21  ·   by 크리스

민족주의 단상

고미숙이 쓴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2001)에 관한 단상. 정확하게는 장정일이 이 책을 보고 쓴 <장정일의 공부>(2006) 중 한 챕터를 읽고 든 생각이다.​

직설적이든, 그렇지 않든 두 사람은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그 근원을 추적함과 동시에 도그마적 성격의 기원, 그러니까 민족주의와 기독교의 융합을 짚어내고 조각낸다. 간단히 말해, 지금 우리의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민족주의는 결국 '근대의 기획'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고미숙의 표현인지, 장정일의 표현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책에는 "단 한번의 시술로 21세기를 사는 오늘의 우리마저 강제한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이들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전쟁은 가만 따져보면 고삐 풀린 민족주의 간의 필연적 충돌이었고, 그렇기에 전쟁이 끝난 뒤 등장한 담론들은 일단 민족주의를 해체하는 것에 주력했다. 민족주의가 이 모든 사태의 원흉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때 굉장히 급진적인 담론처럼 언급되던 민족주의의 해체 시도, "민족은 허구"라는 담론은 이제는 되려 낡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1983)가 나온지 벌써 40년 가까이 됐다. 그사이 민족주의는 너덜너덜해졌고, 적어도 담론의 영역에서는 완전히 풍화돼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민족주의는 결국 국가 동원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에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더구나 멜팅팟(melting pot), 다문화 사회로 급속도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본다면, 민족주의는 서둘러 제거해야 할 이념임이 분명해 보인다. 나 역시 민족주의를 근대의 핵심 테제로 놓고 비판한 고미숙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보통의 한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恨)' 문화마저 근대 기획의 일환이라고 분석한 지점에서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과연 민족주의가 전적으로 폐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머리에 남는다. 배타와 차별, 레이시즘(racism)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핏줄과 영토를 민족주의 원형질로 본다면 핏줄을 지운, 그러니까 한반도(혹은 남한)라는 공간만 남은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모두의 설명처럼 한국의 민족주의란 것이 주권 공백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선조들의 슬기', 불가피한 '정신승리'였다지만, 그 이후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만들어낸 동력인 것도 맞다. 즉 근대를 만든 토대인 셈이다. "1894~1910년을 근대로 본다"는 고미숙은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만, 본디 '근대'란 것은 봉건제의 붕괴, 자본주의 질서의 도래를 의미한다.​

서구에선 사적 이익을 강조하는 사회계약론이 근대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 자본주의적 부흥을 꽃피웠다면, 우리나라에선 그 자리에 '민족주의'란 것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확하게는 국가자본주의, 즉 서구처럼 개별 부르주아들의 이익 추구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고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는 일사분란한 태도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국가 폭력에 의한 무수한 착취와 희생이 뒤따랐으며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태도가 세계 최빈국 한국에 자본주의를 굉장한 속도로 이식시켰다.

그렇다면 우리의 근대를 쌓아올린 오랜 버릇, 이를테면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보여진 일사분란함, 개인 감염자의 동선 공개로 상징되는, 이것을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장정일과 고미숙은 IMF 때 전국민이 함께한 금 모으기 운동을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민족주의적 재현, 혹은 국가적 해프닝처럼 설명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최소한의 피해로 넘겨온 데에는 번번이 어떤 태도들이 작동한 게 사실이다. 국가와 공동체를 우선시하고 모든 국민이 일치단결해 어떤 목적을 완수하려는 그 본능에 가까운 태도는, 틀림없이 민족주의가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민족주의를 만악의 근원, 민주주의의 적처럼 묘사하는 것을 볼 때면 어쩐지 찝찝한 구석이 있다.

민족주의는 자칫 다스리기 어려운 폭력과 차별, 배제의 수단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뽕'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따졌으면 하는 것은, 그동안의 국가적 위기에서 목격한 우리사회 일사분란의 기원을 민족주의의 전통 말고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느냐는 것과, 혈통의 의미가 옅어진 민족주의가 정말 불가능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의문은 끝모를 해체가 진행되고 있는 공동체의 복원, 그러니까 공동체 구성원들을 보다 단단하게 비끌어맬 수단과 방법, 담론이 현재, 그리고 앞으로 또 있겠느냐는 의구심에서 비롯된다.

물론 '혈통이 제거된' 민족주의라는 것 자체가 형용모순일 수 있다.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고 하지 않는가. 적어도 마늘만 먹은 곰이 인간이 됐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역사'로 가르치는한 나에게 이런 의문은 계속될 것 같다.

2020년 6월

크리스
@yoorak_coffee_roasters
안녕하세요!
작성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