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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인터뷰① Huyn 박현지
지난해 10월 대구의 한 성인콜라텍에서 열린 <제1회 대구 앙데팡당展> 전시장. 한 작품 앞에서, 사람들 발걸음이 멈췄다. 마치 물길에 놓인 둑 같았다. 일부는 눈을 비볐고 일부는 미간을 찌푸렸다. 눈 사이 힘이 팍 모였던 건 꼭 어둑어둑한 공간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작품 제목 때문이었을 게다.
<비켜이씨발새끼야이씨발놈아비키라고이개새끼야>(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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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놓인 작품은 한 술 더 떴다. <씨발새끼가뭐하는새끼야이개새끼가이씨발놈이확뒤지고싶나이개새끼가>(2024)...
(2024년 개천절에 열린 제1회 대구 앙데팡당展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람들은 고개를 휙휙 돌리며 두 작품을 번갈아 보거나 자기만 들릴 정도로 작게 제목을 중얼거렸다. 작품이 말하려는 바는 퍽 단순해 보였다. 적나라한 육체폭력. 상스럽기 그지 없는 이름의 두 작품은 각각 두 사람이 뒤엉켜 치고받는 모습을 그렸다. 아니, 자세히 보면 얼굴이 없고 신체가 말랑말랑한 것이 꼭 찰흙을 뭉쳐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물으려 작가를 찾던 눈동자들이 허공에서 다시 방황했다. 긴 머리의 20대 여성이 작가명 표찰을 이마에 붙인 채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서 있었던 것. 사람들은 원래 그러려고 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고, 잠시 멈춰놨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음... 저 나름대로 과감한 실험이었달까요? 둘 다 '더 글로리'란 넷플릭스 드라마 속 대사예요. 악惡에 대해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이름표는.. 제가 평소에 그러고 다니진 않아요.(웃음) 작품도 그렇고 사람들 반응을 보고 싶었죠. 개인적으로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박현지(23). 아티스트 Huyn(후인)의 모든 주제 의식은 '욕망'으로 귀결된다. '도우'라는 가상의 재료로 자신이 관찰한 타인의 욕망을 평면에 옮긴다. 욕망이란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 그런 까닭에 '활활', '펄펄', '이글이글' 같은 부사어와 곧잘 어울려 사용된다.
아마 그런 강렬한 이미지를 상상하고 박현지를 만난다면 다소 의외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지난 2일 대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의 인상과 말투는 평균 이상으로 차분했고,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욕망과는 꽤 거리가 먼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는 "욕망이란 감정을 잘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어쩌다 잘 알지도 못하는 욕망에 천착하게 된 걸까. 도우란 또 무엇일까.
안녕하세요. 저는 인간의 욕망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Huyn 박현지라고 합니다.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도우'란 걸 그리는데, 도우는 욕망을 완벽히 충족시킬 수 있는 가상의 재료이자 현실에 존재하는 '타인'을 재해석한 결과물을 말합니다.
도우는 제 머릿속에서 나온 가상의 개념이예요. 제 세계관 안에서 도우는 인간 욕망을 '완벽히' 충족시킬 수 있는 존재이며, 동시에 캔버스 안에 갇힌 존재이기도 합니다. 피자 도우Dough처럼 신체기관이나 뼈 없이 말랑말랑한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영어 같지만 언뜻 한자 같기도, 한글 같기도 하죠. 그런 모호하고 의문스러운 느낌을 작품에 담고 싶었어요.
(초창기 작품의 모습)
도우를 그리기 시작한 지 2년쯤 된 거 같아요. 사실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만들어봐야지' 했던 게 아니예요. 어느날 지난 제 작업들을 보는데 문득 공통점이 보이더군요. 사람 형상의 무엇이 계속 나오는데 얼굴은 없고 뭔가 특이한 질감들이 보이고.. 그런 일관성이 포착되니까 '이거 한번 이름 붙여봐야겠다' 해서 만들어진 게 바로 도우입니다.
즉, 그에게 '도우'란 의도의 결과가 아니라 뒤늦게 '발견'된, 우연의 산물인 셈. 그의 설명은 언뜻 본인의 점dot 강박을 뒤늦게 알아채고 시그니처로 승화시킨 팝아티스트 야요이 쿠사마(95)와 겹쳐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적으로 점에 집착하던 야요이 쿠사마는 그것이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외려 예술적 기반으로 활용한 바 있다.
다만 그에게 도우는 아직 완성형이라기보다 진행형에 가깝다. 최근 작품 속 도우들은 대체로 피자 반죽 같은 질감을 보이지만 때론 불꽃 같기도, 때론 적외선 카메라에 잡힌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한다. 표현하려는 욕망에 따라 도우의 형태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는 사람들은 공감하실 거예요.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내가 진짜 그리고 싶은 게 뭘까. 뭘 하고 싶은 걸까. 그런데 제가 저를 봤을 때 욕망도 별로 없고 취향도 그다지 뚜렷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 욕망에 관심이 갔던 거 같아요. 저들은 왜 저럴까.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히는 모습이 내심 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 타인의 욕망을 관찰해봐야겠다 한 거죠. 욕망에서 떨어져 있으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첫 시작은 2023년 겨울에 그리기 시작한 < Shopping >이라는 작품이예요. '소비'라는 키워드가 현대사회의 욕망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봤어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란 말이 있어요. 자크 라캉이란 프랑스 정신의학자가 한 말인데, 저는 현대인의 소비 행태가 이 말에 가장 들어맞는다고 봐요. 자기가 사고 싶고 갖고 싶은 게 진정 자기 안에서 나온다기보다 타인의 취향과 선호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욕망과 개인적 욕망의 경계에 대해 질문해보고 싶었어요.
Shopping(2024)
그외에도 식욕, 폭력, 정상성, 물질 등을 다뤘죠.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큰 작품은 < Lump of Dough:gaze >예요. 캔버스 안에서 관람자를 관람하는 도우 덩어리들을 표현했죠. 보통의 작품은 관람자가 보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작품 안 도우들이 관람자를 본다는 점에서 달라요.
현대인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타인의 관심과 인정 아닐까요? 그 핵심에 '응시'가 있죠. 보고 보여지는 것, 가장 강렬한 욕망의 대상이 됐다고 생각해요. 응시는 저 개인의 욕망이기도 합니다. 아마 대부분 그럴 거예요. 그림이란 본질적으로 타인에게 보여지는 것을 전제로 하죠. 그런 면에선 제가 가진 욕망의 핵심이기도 하네요.
얼마 전 작은 작업실을 구했다는 그는 "언제 한 번 구경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엔 너무 초라하다"며 극구 손사레를 쳤다. 구색이야 어떻든 작업실을 만들었다는 건 이제 상업작가의 길, 즉 '정글'로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단 뜻. 가능성을 인정받아 조만간 개인전도 열 계획이지만 그의 앞에 놓인 과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그가 말하는 '욕망'과 '도우'는 꽤나 신선한 접근이지만 잘 정돈되거나 정제되진 않은 느낌. 도우를 둘러싼 '세계관' 역시 어떻게 논리적 설득력과 서사적 완결성을 갖출지도 넘어야 할 산이다.
Lump of Dough:gaze(2024)
말씀하신대로 세계관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은 일 같아요. 그럼에도 세계관 구축에 집중하는 건 일단 제가 재밌어서예요. 이리저리 상상하고 규칙을 만드는 게 그냥 재밌어요. 요즘엔 '창', window라는 개념에 골몰해 있어요. 창은 유리를 사이로 두 세계를 분리하며 밖과 안에서 서로 볼 수 있지만 닿을 순 없죠. 캔버스가 도우와 우리 사이에 놓인 일종의 창 같단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사람들의 욕망을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관찰해볼까 하고 있어요. 생전 안 가본 클럽이나 경마장 같은 곳도 가보고 말이죠.(웃음) 전 늘 다른 사람들의 욕망이 궁금해요. 왜 그럴까, 왜 저럴까. 스스로 욕망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욕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제 작품 세계도 훨씬 다채로워질 거라 생각해요.
그러다 언젠간 도우들이 창 바깥, 캔버스 바깥 세상으로 나올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제 작업이 1막, 2막.. 계속 이어진다면 2막에서는 기술을 접목해 도우들이 현실세계에 나오는 걸 표현하고 싶어요. 3D프린터나 실물 조각으로 말이죠. 그땐 지금과 달리 사람에 꽤 가까운 형태가 될 거예요. 물론, 꽤 나중의 일이겠지만요.
씨발새끼가뭐하는새끼야이개새끼가이씨발놈이확뒤지고싶나이개새끼가(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