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발걸음
2024.07.23  ·   by 크리스

“여, 잘봤다. 멋있던데?”

‘탐사기획-누가 아이들의 성을 사는가’ 시리즈 첫화가 나간 뒤 동료 기자들로부터 다소 쑥스러운 칭찬을 많이 받았다. 아마 기사에 덧붙인 현장 영상 때문이었으리라. 영상 속 ‘용감한’ 기자들은 도망가는 청소년 성매수 시도 남성들을 끈질기게 쫓아 인터뷰를 요구했다. 내 모습이지만 처음 영상을 보았을 땐 남몰래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영상과 달리 현실은 그리 멋있지도, 그리 용감하지도 않았다. 18번의 ‘만남’은 항상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취재팀이 모두 경찰서를 출입한 것도 영향이 컸다. ‘요즘 같이 흉흉한 세상에 돌발상황은 없을까’, ‘상대가 위협을 가하지는 않을까’ 얼마 전 다뤘던 강력사건들도 떠올랐다. 후배 기자에게 “무슨 걱정이 그리 많냐”고 짐짓 호기를 부렸던 것과 달리, 현장에 나가기 전날은 항상 잠을 뒤척였다. 조금이라도 몸집이 커보이게 하기 위해 두꺼운 패딩 조끼를 외투 안에 껴입기도 했다. 누가 나올 지,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진심으로’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문득 ‘다 큰 기자들마저 이런데…’란 생각이 스쳤다. 일면식 하나 없는 낯선 어른들을 만나러 가면서 아이들은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교복을 입고 나오면 돈을 더 주겠다’,‘친구와 같이 나오라’고 제안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우리사회의 어떤 모습을 봤을까. 아이들이라고 두려움이 없었을까.

“때론 아이들이 맹랑하거나 영악하게 느껴질 때도 있죠. 근데 여리고 어리숙한 것도 아이예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어른들이 아이를 아이로 보지 않는 게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거래는 성숙한 상태에서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우리 법은 아이들의 매매 행위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거래를 하기엔 미성숙한 존재란 것이다. 그런데 유독 ‘성매매’에서만큼은 별개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아이들도 알 것 다 안다’는 것이다.

가정이 붕괴된 뒤 ‘잘 데가 없어서’, ‘배가 고파서’ 아이들이 성매매에 유입되는 것은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 지 아느냐’고 꾸짖기 전에 그 아이들의 발걸음을 한 번만 상상해보자. 정말 ‘알 것 다 아는’ 기자들마저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던 발걸음이다.

2018년 12월

크리스
@yoorak_coffee_ro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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