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의 간택
2024.07.23  ·   by 크리스

가끔 유튜브만 한 발명품이 또 있을까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보카도 보관법, 호텔식 수건 개는 법, 온수매트 청소법 등 없는 게 없다. 요즘엔 5∼10분짜리 예능 영상을 볼 때가 많은데, 재밌게 봤던 영상 하나를 틀어놓으면 ‘맞춤 동영상’이 끊이지 않고 재생된다. 넋놓고 보다간 몇 시간씩 ‘순삭’되기 일쑤다. 거기엔 평소 별 관심 없던, 이를테면 사막에서 생존하는 법 따위의 영상이 종종 끼어있는데, 그게 또 보면 그렇게 재밌을 수 없다. 기계가 어쩜 이렇게 내 취향을 잘 아는 건지, 신통할 따름이다.

그런데 나만 이런 건 아닌 모양이다. 가만 보면 이런 영상들에는 꼭 ‘오늘도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 영상으로 이끌었다’거나 ‘아무도 이 영상을 검색해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란 댓글이 달려있다. 일종의 ‘밈(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문화 요소)’으로, 이른바 ‘알고리즘의 간택’을 이르는 말들이다.

유튜브에선 알고리즘이 ‘왕’이다. ‘간택’만 되면 조회수 10만, 20만쯤은 우습다. 그래서인지 온라인에는 ‘이렇게 하면 간택된다’는 비법(?)이 수두룩하다. 거의가 택도 없는 내용들이다. 유튜브가 영업비밀을 그리 쉽게 터놓을 리 없다. 물론 이해는 간다. 아무리 공들여 영상을 만들어놔도 노출되지 않으면 말짱 꽝이기 때문이다. 조회수가 밑천인 유튜버들에게 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분석은 사활이 걸린 일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최근 유튜버들 못지않게 알고리즘 분석에 열을 내는 게 바로 언론사들이기 때문이다. ‘대형포털 어느 자리에 얼마나 노출되느냐에 따라 뉴스가치가 정해지는 시대’라고들 한다.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고백하자면 나도 최근 이 때문에 쓰린 속을 달랜 적이 있다. 이번 부서에 오고 난 뒤 야심차게 쓴 기사들이 온라인에 내놓는 족족 묻혔던 것이다. 알고리즘은 비정했다. 이 ‘가혹한 안목’에 울상 짓지 않아본 기자, 누가 있으랴. 이 칼럼이라고 다를까. 간택? 어림도 없다.

때마침 타사 기자들과 만날 자리가 있어 슬쩍 이 얘기를 꺼내봤다. 한마디씩 더해지더니 “요즘 들어 의미 없는 속보, 단독이 너무 많아졌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이 역시 ‘원흉’은 알고리즘이다. ‘드루킹 사건’ 이후 포털 뉴스 알고리즘이 ‘속보’와 ‘단독’만 주목하니 만들어진 현상 아니겠느냐는 거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알고리즘 분해 작업이 얼마간 이뤄졌다는 풍문이 들려온다. 속보를 내놓고 후속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거나, 단독 기사가 분명한데 ‘속보’를 붙여서 내보내는 게 다 그 일환이란 것이다. 이런 시도들이 실제 얼마나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자들이 공들여 쓴 기획기사 찾기가 전보다 어려워진 건 분명하다.

“알고리즘은 여러분을 이미 알고 있는 것, 믿고 있는 것 또는 좋아하는 것들로 이끕니다. 이에 저항하십시오(Push back).” 애플의 수장 팀 쿡의 말이다. 상업의 영역이야 그렇다 쳐도 저널리즘마저 이 ‘알 수 없는 알고리즘’들에 맡겨도 괜찮은 것일까. 은연중 기자 세계를 지배하는 이 알고리즘이란 녀석은, 과연 믿어도 되는 걸까. 2016년 프로퍼블리카가 미국 주법원들이 쓰던 알고리즘 ‘콤파스(COMPAS)’가 흑인을 차별한다는 탐사보도를 내놓으며 경고한 건, 한마디로 이런 것이었다. “아직도 그걸 믿으세요?” 우리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

2020년 2월

크리스
@yoorak_coffee_roasters
안녕하세요!
작성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