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집행 20년, 그들이 기억하는 사형수들
2024.09.04  ·   by 크리스

사형수 교화에 일평생 바친 문장식 목사·조성애 수녀·삼중 스님

1997년 12월30일. 20년 전 오늘, 전국의 사형수 23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 대통령 인수위가 꾸려진 지 불과 나흘만에 기습적으로 이뤄진 김영삼 정부의 ‘작품’이었다. 이후 더이상의 사형집행은 없었다. 우리나라는 2007년부터 국제사회로부터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됐고, 사형선고 역시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1990년대 1심 사형선고 연 평균 23.9건→2010년대 1.6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형벌이 된 사형. 흉악범죄가 대두될 때마다 집행 여론이 들끓지만, 유럽연합(EU)과의 형사법조약, 국제사회의 인권 흐름 등 여러 여건 상 사형이 다시 집행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럼에도 법률적으로 완전한 사형폐지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사형폐지론자들은 사형은 결국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제도살인’이란 점을 곧이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죽음으로 죄를 갚는 방식이 과연 문명사회에 맞는 것이냐는 철학적인 질문, 혹시 수사당국의 실수나 재판부의 오판 가능성은 없는지 등 현실적인 문제도 제기된다.

특히 사형수를 곁에서 지켜보고, 그들의 집행까지 목격한 종교인들의 목소리는 더욱 간절하다. 일평생 수백명의 사형수들을 만나 교화활동을 펼쳐 온 세 명의 원로 종교인들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사형수와 사형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장식 목사

◆“잊혀지지 않는 악몽…” 문장식 목사

‘사형수의 대부’ 문장식(82) 목사는 우리나라에서 사형집행을 가장 많이 목격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1983년부터 1997년까지 자신이 입회한 60여차례가 넘는 사형집행과 관련한 모든 것을 기록했다. 사형수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이었는지, 평소 태도나 사형집행 전 말투나 얼굴은 어땠는지 등 몰래 가져간 메모지를 이용해 기록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기록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사형장 일기 ‘아! 죽었구나 아! 살았구나’(2006)다.

“울며 찬송가를 부르는 사형수의 얼굴, 목숨이 끊어지는 소리, 집행장의 공기… 모든 순간순간이 눈을 감아도 눈 앞에 선합니다. 사형 집행에 처음 입회했을 때 몇달 동안 ‘생명은 무엇일까’, ‘인간은 무엇인가’란 고민에 매일같이 울며 괴로워했습니다. 신문으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죠. 떠나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그들과 관련한 모든 것들을 기록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 목사는 본인 이외에도 사형집행 장면을 참관한 이들이 충격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것을 종종 봤다. 그는 “눈 앞에서 한 사람이 밧줄에 목이 걸린 채 매달려 죽어가고 있지만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어떻겠는가”라며 “의사나 검사, 교도관 모두가 ‘언제 숨이 끊어지나’에만 관심을 가지는 등 집행장은 인간성이 완벽히 상실된 공간”이라고 떠올렸다.

이처럼 사형제가 지닌 야만성과 비인간성은 문 목사가 사형폐지를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현행법 상 사형은 교도소나 구치소 내에서 교수형으로 이뤄지는데, 검사와 검찰청 서기관, 교도소장, 교도관, 의사, 종교인 등 40여명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집행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양심과 무관하게 살인행위에 관여한다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 상당하단 것이 문 목사의 지적이다.

실제 은퇴 이후 사형집행에 대한 잔상 등으로 인해 후유증을 겪는 전직 교도관들이 적지 않다. 과거 연거푸 마약에 손을 댔다가 기소된 한 교도관은 “사형집행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목사는 “누구나 한 번이라도 사형집행을 목격하게 되면 이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인권인 생명에 대한 고민은 수많은 선진국들이 사형제를 폐지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조성애 수녀

◆“그가 지금 태어났다면…” 조성애 수녀

조성애(85) 수녀는 ‘사형수들의 어머니’로 불린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등장하는 모니카 수녀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조 수녀는 1976년 처음 교정사목에 발을 들여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사형수들을 만나 교화활동을 했다. 그가 지금껏 만난 사형수만 해도 기 백명에 이른다. 가족이 인수하지 않은 사형수 시신 32구를 직접 거두는 등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종교인으로서는 최초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사형수 한명 한명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지만 조 수녀가 특히 잊지 못하는 사형수는 1997년 마지막 집행 때 사형된 김모(세례명 요셉)씨다. 시각장애인 어머니와 청각장애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김씨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일찍 잃는 등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고, 선천적으로 좋지 않던 눈이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나빠졌다. 보이지 않는 눈 탓에 세 번이나 취직자리에서 쫓겨난 그는 현실을 비관, 죽음을 결심하고 차량을 빼앗아 여의도를 마구 질주하다가 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부상자를 냈다. 당시 그의 나이 21세.

“요셉은 제가 만난 사형수 중 가장 착한 아이였습니다. 가족들을 비극적으로 잃은 데다 눈이 보이지 않아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장애인을 위한 사회안전망이라곤 전혀 없었습니다. 어디서나 손가락질 받고 괄시받기 일쑤였죠. 먹고 살기는 해야하는데 눈이 잘 보이지 않아 간신히 들어간 공장에서 연달아 세 번이나 잘렸다고 해요. 이런 사고로 이르는데까지 우리 사회의 책임이 정녕 없었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딱한 사정이 알려지자 당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윤모(5)군의 할머니는 김씨를 위해 안경을 맞춰주고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김씨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기도 했다. 당시 김씨가 구치소에서 쓴 자서전은 공지영 작가에게 건네져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소재가 됐다. 수많은 사형수들을 만나본 조 수녀는 적절한 교육과 보살핌, 사랑을 받았더라면 그러한 범죄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이들이 적지 않다고 본다.

“사형수들이 죄가 없다는 것은 아니예요. 하지만 행동은 비록 악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잘못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이었다면 절대 사형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사형은 사회구조적인 책임을 사형수 한 개인에게만 떠넘기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합니다.”

삼중 스님

◆“제도는 완벽하지 않아…” 삼중 스님

삼중(75) 스님은 1980년대 법조계 원로들과 함께 ‘억울한 사형수’에 대한 구명운동을 펼쳐 수많은 감형을 이끌어냈다. 1999년에는 배명인 전 법무장관 등과 함께 20년 복역한 한 사형수의 가석방을 물밑에서 돕기도 했다. 그가 지금껏 만난 사형수만 500여명. 그곳에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인 흉악범죄자부터 “나는 아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까지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삼중 스님이 사형수들의 구명활동에 적극 나섰던 건 그 시절의 사형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문법이 고스란히 적용됐기 때문이었다.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는 피의자들은 종종 자포자기에 이르곤 했다. 그는 “돈이 없어서, 좋은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서, 경찰의 고문 등으로 자백을 해서 사형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삼중 스님이 기억하는 1980년대의 한 치정 살인사건에서는 남편을 살해한 피의자 여성이 ‘어차피 죽는거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막판에 진술을 뒤집어 단지 여성이 사다달라는 독약을 사다 건네준 남성까지 사형에 이르는 일도 있었다. 그는 “해당 남성은 재판 때마다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사형됐다”며 “같이 생활한 계장급 교도관이 ‘진짜 억울한 게 맞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고 나중에 한 신부로부터 ‘여성으로부터 고해성사를 들었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오판의 가능성은 사형제가 안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로 지목된다. 대개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죄를 인정하기 마련이지만 실제 마지막 순간까지 “억울하다”고 주장한 사형수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985년 10월31일 사형된 최은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 “나는 억울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나를 오판한 자와 위증한 자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국민적으론 사형존치 여론이 높지만 이처럼 사형제가 지닌 문제점들이 분명한 만큼 이제는 발전적인 논의를 할 때가 됐다는 게 삼중 스님의 생각이다.

“사형은 사람의 생명을 완벽히 박탈한다는 점에서 교화를 기본으로 한 형벌의 목적과도 맞지 않아요. 또 외국에서도 사형 집행 이후 진범이 나타나거나, 정치적으로 사형제를 악용하는 경우가 최근까지 나타나고 있죠. 무엇보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은 이상 오판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형제도 폐지를 지금 다시 생각해봐야하는 이유입니다.”

크리스
@yoorak_coffee_ro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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